[삶과 믿음] 행복한 사람들

몇 주전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 중요한 오월의 기도행사중에 하나인 '성모님의 밤'을 마치고 사제관으로 돌아오면서 밤 하늘을 보니 언제나 그렇듯이 도심의 불빛 속에 가려 서너 개의 별만이 초라하게 뉴욕의 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각박한 도시의 삶입니다.

바쁨 속에서도 뉴욕을 떠나 남미 볼리비아의 산타 크루즈와 산 안토니오로 의료선교를 다녀왔습니다.

본당의 의료진과 봉사자와 함께 대구 대교구의 신부님들이 원주민 선교를 하고 계신 곳을 방문해 의료 진료를 하고 필요한 치료와 의약품을 나누어 주는 선교 순례였습니다.

신자들의 정성을 모아 준비한 의약품을 의료선교 봉사자들이 몇 주간에 걸쳐 종류별로 나누어 '이민 가방'에 차곡차곡 넣고 무게를 잽니다. 하나라도 더 가져가기 위하여 항공사가 허락하는 무게를 꽉 채워 넣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이 선교의 가장 중요한 준비이며, 정신적으로도 준비하는 기도 시간이기도 합니다.

떠나는 날 공항에서 짐을 부치면서부터 시작하는 우리 기도의 주제는 "제발 이 약들이 아무 탈없이 볼리비아 세관을 통과하게 해주십시오." 입니다.

다행이 모든 짐이 통관되어 마치 잃어버린 동전 한 닢을 찾은 여인처럼 (루카 15: 8-10) 서로 기뻐하며 순례를 시작합니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 산악 도로를 픽업트럭에 나누어 타고 5시간을 달려 산속의 250가구의 아주 작지만 주변의 산악 마을의 거점 지역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한 산 안토니오 시에 도착합니다.

도착하자 마자 늦은 점심을 간단히 먹고 약품을 챙겨서 보건소로 가보니 벌써 수십 명의 주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의료 선교는 시작되었고, 몇 분이 지나자 갑자기 한 소년이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울면서 들어오고 아직 준비가 덜 끝난 의사 선생님의 발길이 바빠집니다.

소년의 팔은 그 날 오전에 부러져 보건소에 왔으나 치료 방법을 모르다 우리 팀의 의사 선생님이 치료해 주었습니다. 한참 후 부러진 팔에 캐스트를 하고 진료실을 나오는 아이와 엄마의 안도의 미소가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참 잘 왔다!" 6년째 매년 우리 의료 선교에 참여하신 한의사 선생님의 이 선교 순례 힘이 들면서도 삶의 소중한 휴가와 같다는 고백이 진실임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의사를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오지에 살고 있기에 우리의 방문은 마을의 기쁨이고 축제입니다. 난생 처음 주사를 맞고 먼 동양의 침을 맞으니 그 신기함과 기쁨이 교차하며 필요한 응급 약품을 타가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입니다.

항상 갈구하면서도 입에 올리기 멋쩍은 단어, '행복'은 멀리 있지 않지만 무지개를 찾아가듯 살아가는 우리 도시의 삶과 참 다르게 보입니다. 언제나 상대적 박탈감과 상대적 빈곤에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는 참 대조적 입니다.

이 곳 원주민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적 고민과 고통을 갖고 살아가지만 그 해결은 의외로 간단하고 쉽습니다. 마치 도시 사람들이 바둑을 두듯이 계산하며 복잡하고 어렵게 살아간다면, 이곳 사람들은 오목을 두듯이 간단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듯합니다.

이 곳 분들의 삶을 바라 보면서 근본적인 행복의 조건을 생각합니다. 루카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6: 20)"

오늘도 뉴욕의 밤하늘에는 볼리비아 정글의 산 안토니오 밤하늘 만큼이나 많이 별들이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다만 도심의 불빛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을 뿐입니다.


김문수 / 성 바오로 정하상 천주교회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