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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모란을 꺾으며

내 욕망이 네 사랑보다 붉다. 모란이여 천박한 내 사랑을 믿지 말고 너의 아픈 눈물을 믿어라. 그냥 보기만 해도 황홀한데 기어코 꺾어 화병에 꽂는다. 사랑은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면 깨지는 걸까. 가까이 곁에 둬야 마음이 놓이는지 싹둑 잘라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돌이켜보면 내 사랑은 풀잎이었다. 가지에 붙어 모진 목숨 지키려고, 떨어져 땅 속에 묻히지 않으려고 안달하고 발버둥쳤지만 결국은 세월 속에 묻혀 사라진 작은 풀잎 송별이었다. .

핑크빛 감도는 흰색 모란은 봉우리가 단단해서 꺽지 않았다. 며칠 기다리면 청상과부처럼 슬프고 요염한 꽃 피워낼 줄 알았는데 자고나니 밤새 활짝 폈다. 사랑은 기다리지 않아도 이렇게 오는구나. 장미가 5월의 꽃이고 꽃의 여왕이라면 모란은 구중궁궐의 위상과 기품을 지키는 태후마마다. 비록 이 삼일, 혹은 일주일을 채 못 넘기고 낙화되 흩어진다 해도 만개한 동안은 모란의 자태를 견줄 아름다움이 세상에 없다.

모란은 화려하고 풍염하여 위엄과 품위를 갖춘 꽃이다. 중국에서는 덕스럽고 풍만한 모습의 모란을 부귀화라고도 한다. 모란과 장미는 신이 창조한 살아있는 예술품이다. 아름다움과 기품에 있어서는 쌍벽을 이루지만 풍려함으로는 모란이 장미를 단연코 앞선다. 모란은 장미에 비해 꽃 모양이 장려하고 소담스러우면서 여유와 품위를 지니고 있어 화중왕이라 불린다.

당 현종이 모란꽃을 즐기다가 모란을 읊은 훌륭한 시를 물으니 이정봉이 '나라에서 으뜸 가는 미인의 얼굴엔 아침에도 술기운이 돌고, 천계의 맑은 향기가 밤에 옷에 스며드네'라는 시 두 구절을 일러준다. 감격한 현종이 양귀비에게 황금 술잔을 들게 하고 시의 뜻에 걸맞은 포즈를 취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모란이 '국색천향(國色天香)'이라 불리는 것은 이에 연유한듯하다. 국색은 나라에서 가장 미인이란 말이고, 천향은 하늘에서 내려진 것 같이 향기로움을 지닌 꽃이란 뜻이다.



당 태종이 신라에 모란 꽃씨와 모란꽃 그림을 보냈는데 선덕여왕이 "꽃은 고우나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 했다고 전해진다. 중국 모란그림은 길상화 (吉祥畵)로 모란이 영원한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반면 나비는 유한한 장수 (長壽)인 80세 까지만 부귀를 누린다는 뜻이 돼 나비를 그려넣지 않는다고 한다.

꺾어도 꺾이지 않는 게 사랑이다. 모란을 꺾었다고 모란의 품위있는 사랑을 감히 탐할 수 있으랴. 부귀영화와 사랑이 찰나고 순간이면 어떠리. 패티오 문을 연다. 모란꽃 향기에 취해 혹여 나비 한 마리 날아들지도 모를 일이다.


이기희 / 윈드화랑대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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