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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장훈 선수

민병국 / 일사회 회원
민병국 / 일사회 회원 

[LA중앙일보] 발행 2019/06/07 미주판 23면 기사입력 2019/06/06 18:35

6·25 전쟁이 끝나고 경제적, 사회적으로 별로 웃을 일이 없던 때 라디오 오락 프로그램은 인기였다.

'홀쭉이' 양석천과 '뚱뚱이' 양훈 콤비와 입심 좋은 만담가 장소팔과 고춘자 콤비는 스타 중의 스타였다. 그 후로 우리 앞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사람이 '후라이보이' 곽규석이었다.

공군 중사로 제대하고 사회로 나온 그는 후라이보이라는 예명에 대해 "거짓말쟁이 후라이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후라이보이"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물론 그는 파일럿은 아니었다. 군 복무시 부대를 돌아다니며 위문공연 무대에서 MC를 보며 실력을 닦은 게 전부였단다. 혜성같이 나타난 후라이보이는 날이 갈수록 관객의 환호와 갈채를 받으며 코미디 황제 자리를 차지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세련된 말솜씨와 저속하지 않은 코믹함이 그의 무기였다. 북한군의 따발총 소리, 마하의 속도로 고공을 나는 제트기 소리, 서울거리를 활보하던 시발자동차 엔진 소음 성대모사는 일품이었다.

1965년 즈음 TBC방송의 '쇼쇼쇼' 사회자로 활동할 때 그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던 그가 막강한 인지도를 발판삼아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대 고비를 맞게 되니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광고 빌보드 간판 업종이었는데 거래처는 많았지만 수금이 여의치 않았고 결국 사채를 끌어다 써 직원들 임금을 지불한 것이 부도를 내고 말았다.

이후 본의 아니게 해외로 나가게 됐다. 일본의 도에이 그룹, 영화사와 도에이 플라이어스 프로야구단의 초청을 받아 일본에 잠시 체류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일은 도에이 팀 장훈 선수의 뒷바라지가 큰 힘이 됐다. 장훈 선수는 백인천 선수도 자기 팀으로 데려와 재팬리그 타격왕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장훈 선수는 왕정치, 나가시마와 함께 일본 야구 3두 마차였다.

어느 날 회식이 있어서 장훈 선수와 곽규석씨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건물 지하로 내려가는데 밑에서 사진기자들이 프레시를 터뜨리고 야단법석, 후라이보이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는데 알고 보니 바로 뒤에 있던 장훈 선수를 보고 난리들이었던 것이다.

장훈 선수는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은퇴 후 재일교포학생 모국방문 친선경기를 창설, 한국 야구발전에도 큰 공을 세웠다. 후라이보이는 얼마후 뉴욕에 정착, 곽규석 목사가 되어 활동하다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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