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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사라지는 서울 노포 식당들

서울 을지면옥이 재개발로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서울시가 노포(老鋪) 보존 방침을 밝히면서 을지면옥은 일단 살아남았다. 을지면옥 길 건너 노가리 골목의 원조집 을지OB베어는 건물주와 명도(明渡) 소송이 걸려 있어 가게를 비워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인사동 한정식의 터줏대감 두레는 운영난으로 폐업한다는 소식이 나오자 단골들이 나서서 폐업을 막았다.

최근 들어 오래된 식당들의 생존 문제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오래된 식당들은 입과 마음에 '음식을 통한 교감'을 남긴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된 식당을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처럼 아낀다. 정서적인 교감 외에도 오래된 식당들은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 1980년에 을지로 공구 골목 한쪽에서 영업을 시작한 을지OB베어는 당시 본격화된 '생맥주 시대'의 화석이다. 1000원짜리 노가리는 함경도 실향민의 눈물겨운 남한 정착기의 산물이다. 을지면옥은 평양식 냉면의 성공적 서울 안착의 상징이다. 을지로의 옛 분위기를 간직한 공간에서 수육에 소주 한잔 곁들이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얇고 구수한 냉면 가닥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체험은 을지면옥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맛과 공간은 따로 떼어서 체험할 수 없는 한 몸이다. 1958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도시 재개발에 관한 국제회의 이후 도시 재개발은 철거 재개발에서 수복 재개발, 보전 재개발로 다시 도시 재생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는 2008년에 피맛골을 재개발로 잃은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해장국 골목과 낙지 골목도 이때 사라졌다. 도시 재생으로 옛 건물이 보존되더라도 급격한 임대료 상승은 오래된 가게의 생존을 위협한다. 거기에 최저임금 상승, 주 52시간 노동시간 제한, 숙련 요리사의 부족이 가세했다. 가성비와 '가심비'로 상징되는 외식의 저가화와 외식의 감소, 배달의 일반화와 편의점의 외식화, 가정간편식(HMR) 등장 같은 다양한 요인까지 쓰나미처럼 오래된 식당들을 덮치고 있다.

오래된 식당 하나가 사라지면 추억만 지워지는 게 아니다.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음식들이 잊히는 것이다. 개인에게 이 거대한 흐름에 홀로 맞서 견뎌 100년 식당이 되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일본에서는 천년고도 교토와 400년 된 도쿄의 상인 존중 전통과 급격한 변화를 원치 않는 관행 덕분에 2017년 기준으로 창업 100년 이상의 노포 기업이 3만3069개나 된다. 200년을 넘은 기업은 3000개 이상, 1000년을 넘긴 곳도 7개나 된다. 중국이나 일본의 오래된 식당은 가게 자리를 옮긴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임대차 계약 기간이 길고 급격한 임대료 상승도 별로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도시재생이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그로 인해 급격한 임대료 상승이 계속되면 '100년 식당'은 공허한 바람으로 끝날 것이다. 대신 100년 재벌 식당, 100년 건물주 식당만 남을 것이다. 변화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 아울러 오래된 식당 선정 기준과 공정성이 확립되고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오래된 공간의 친숙함과 익숙한 맛을 외면할 사람은 없다. 도시 재생에 오래된 식당만큼 대중들의 관심을 끌 만한 게 있을까 싶다.


박정배 /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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