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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한국에서 본 한국

한국에 가 있었던 5월 하순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쾌적한 날씨였다. 서울에서 머물렀던 친구집은 4·19 민주묘지 근처 백운대가 올려다 보이는 산 속이라 문만 나서면 바로 북한산 둘레길로 들어서게 돼 있어 공기도 청량했다. 교통도 편리해 우이동에서 신설동까지 LA 메트로 전철과는 비교가 안 될만큼 깨끗한 무인운전의 경전선을 타면 시내를 단숨에 들어선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두환 시대 가수 정수라가 부른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의 '아!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한걸음만 들어가 보면 그렇지가 않다. 청년들에게서는 미래나 민족에 관한 담론이 사라진지 오래고 대부분 공준생(공무원시험 준비)에 만족해 한다. 시정잡배보다 못한 정치인들의 쌍소리가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지더니 최근에는 목사까지 거들었다. 국회는 반년 가까이 아예 문 닫아 버리고 싸움만 한다. 이런 천박한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이 상스러움에 여론이 등을 돌리자 '북한에서 누가 쫓겨났느니, 누구는 처형됐느니' 하며 막말보다 더한 거짓 뉴스를 일삼던 보수 신문이 막말 정치인들을 나무라는 모습은 더 역겹다. 그렇다고 '네가 침 뱉으면 나는 가래침이다' 하고 맞장을 뜨는 모습도 흉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나서겠냐고 하지만 대통령이 국민 앞에 화내는 모습을 보이게 하는 것은 잘못이다. '화내면 지는 법' 인데 청와대 참모들은 '장자의 빈 배' 라는 글을 읽어보지도 않았는지. 화를 이기지 못해 여야가 싸우고 노사가 싸우고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쉽게 죽이고 아래 윗층 간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에는 화(火)병이 만연되어 있었다.

6·12 북미회담 1주년이 되는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주춤해진 것도 이 화가 문제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무엇인가 속이고 있다는 마음이 화로 이어지고, 그 화를 이기지 못해 만나지를 못하고 있다. 북미 간의 화가 자칫 남북 간, 한일 간, 한미 간, 한중 간의 화로 이어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다시 갈등이 고조되고 화해의 마음이 식어가는 지금이 한국이 결단할 시기라는 인식을 주고 있다. 아픔과 수치가 뒤범벅이 된 이 중대한 고비에 한국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일까. 자기가 바뀌지 않고 남만 바뀌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은 공허한 일이다. 진보나 보수, 여당이나 야당 어느 한 쪽의 사욕과 당리당략에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다.

한국이 분명한 입장, 뚜렷한 원칙 없이 사방의 눈치만 보다가는 백년하청이다. 만나자고 해놨지만 대답도 없는 북한의 눈치나 살피고, 북한 편을 드는 게 아니냐며 미국이 화내면 그게 아니라고 미국을 달래고, 왜 미국의 이익에만 동조 하느냐며 중국이 화내면 쫓아가 그쪽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하고, 우리는 100년 전에도 그렇게 하다 나라를 잃었다.

지정학적인 불리함, 그것을 오히려 유리한 환경으로 바꾸려면 눈치가 아니라 창의적 결단이 필요하다. 자주력의 회복이다. 힘이 미약할수록 원칙은 분명해야 한다.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서 한국외교의 원칙과 입장은 이것이다 하는 자주적이고 강력한 '2019 서울 선언'을 발표해 한국 내 보수도 진보도 끌어 들이고, 미국도 북한도 그리고 중국이나 일본마저도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

북한에겐 핵 포기 없는 어떤 대화도 없다. 미국엔 전시작전권을 완전 회수해서 한국의 동의 없는 어떠한 대북 군사작전도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중국에 대해서는 사드 배치 때와 같이 한국에 대한 용렬한 보복은 더 이상 용납 안하겠다는 원칙, 일본에겐 미일동맹을 믿고 한반도에 대한 어떠한 야욕도 어림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그때만이 진정 '아, 대한민국'을 노래하게 될 것이다.


김용현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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