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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라운지] 천렵질

[LA중앙일보] 발행 2019/06/11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6/10 19:16

'오늘은 천렵하고 내일은 산행(山行)가세 / 꽃달임 모레 하고 강신(降神)일랑 글피 하리 / 그글피 변사회(邊射會) 할 제 각지호과(各持壺果) 하시소.'

조선 숙종 때 김유기라는 선비가 지은 시조다. 여기서 천렵(川獵)은 내 천자, 사냥 엽자로 냇가에 가서 고기 잡고 술 마시며 노는 물놀이를 말한다. 산행은 사냥, 꽃달임은 진달래 따위로 지짐을 부쳐먹으며 노는 화전놀이다. 강신은 산 제사, 변사회는 활쏘기 모임, 각지호과는 술과 과일은 각자 지참하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천 날 만 날 먹고 노는 옛 한량들의 여유작작 일상을 읊은 노래다.

이 시조에서 보듯 천렵은 물고기 잡고 노는 아이들 놀이이기도 하지만 옛날엔 할 일 없어 시간이나 보내는 사람들의 소일거리이기도 했다. 그러니 살기 바쁜 백성들 눈에는 천렵이나 하러 다니는 양반네가 달가울 리 없었을 것이다.

최근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북유럽 순방길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을 빗대 "천렵질에 정신 팔린 사람마냥 나홀로 냇가에 몸 담그러 떠난 격"이라고 비난해 논란이 되고 있다.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이 도통 마음에 안 드는 야당으로선 충분히 할 수 있는 논평일 수 있다. 하지만 단어 선택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천렵이라는 단어의 어감도 그렇거니와 특히 '~질'이라는 표현이 더 문제였다. 우리말에서 '~질'이란 행동이나 행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이게 붙으면 대개는 경멸, 조롱, 비하의 말이 된다. 계집질, 서방질, 노략질, 분탕질, 선생질, 싸움질, 자랑질 등등. 그런 뉘앙스의 접미사를 대통령 비판에 갖다 붙였으니 일이 더 커진 것이다.

정치는 말이다. 어떤 단어를 쓰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가 그 수준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요즘 자유한국당의 끊이지 않는 막말잔치는 해외서 듣기에도 민망하고 실망스럽다. "좋은 말을 골라 사용하는 것도 민주주의 미덕입니다." 문 대통령 대꾸(?)이긴 하지만 '보수의 품격'을 외치는 정당이라면 한번 쯤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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