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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로 향하는 고래 이동의 길목

[LA중앙일보] 발행 2019/06/12 미주판 26면 기사입력 2019/06/11 18:37

오리건주 뉴포트

고래 무덤이 있는 오리건주 뉴포트 해안 도널드 데이비스 파크에서 사람들이 고래를 관찰하고 있다. 뉴포트 해안과 뉴포트시 북쪽 디포 만의 고래 관광 센터는 고래를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곳이다.

고래 무덤이 있는 오리건주 뉴포트 해안 도널드 데이비스 파크에서 사람들이 고래를 관찰하고 있다. 뉴포트 해안과 뉴포트시 북쪽 디포 만의 고래 관광 센터는 고래를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곳이다.

천둥벌거숭이 소꿉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과학자인 친구는 지난해 미 정부 연구소를 퇴직하고 은퇴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연주하고 학생을 가르치고 여행도 하면서 지낸다.

전화 속 친구의 목소리는 어릴적 추억들을 회상하는 듯 약간 들떠 있었다. 우연히 우리의 학창시절과 맞물렸던 유행가를 듣다 문득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단다. 아마 나를 과거에 얹혀 본인의 어린시절을 회상했을 게다.

70년대 중반 나의 학창시절은 군인들이 정권을 잡고 있던 독재시대였다. 휴강 휴교가 잦았고 다가올 군 입대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암울했었다. 그 시절 송창식의 '고래사냥'이 인기였다.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은 가요계와는 관련이 없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고 한다. 가사의 내용은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하니 애인도 떠났고 빠르게 지난 학창 시절을 아쉬워하는 내용이다. '고래사냥'은 한치 앞을 분간할수 없는 안개 낀 시대를 살던 젊은이들의 좌절과 불안한 삶을 풍자적으로 묘사했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 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나도 '고래사냥' 처럼 불안한 현실을 도피해 기차를 타고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를 잡으러 동해 바다로 떠났다. 동해 바다로 가는 완행열차는 서울의 동쪽 청량리역을 출발해 중앙선을 타고 경북 영주에 도착한 뒤, 영동선으로 선로를 바꿔 북동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태백산맥을 뚫고 동해안으로 향한다.

청량리역을 출발해 강원도 속초로 가는 3등 완행열차를 탔다. 방학을 맞은 야간열차는 젊은 청춘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였다. 초만원을 이룬 열차 안은 사람의 열기를 더한 지상의 더위로 무더웠다. 그러나 모두는 불평은커녕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것 만으로 들떠 있었다.

또래의 승객들은 빽빽한 객차 안 의자걸이에 걸터앉기도 하고 좁은 기차바닥에 앉아 통기타 반주에 '고래사냥'을 고래 고래 불렀다. 일행이 아니더라도 누구라 할 거 없이 유행가를 흥얼거렸다.

밤에 청량리역을 출발한 3등 완행열차는 밤새 철길을 달려 여명의 동해안을 끼고 지쳐 늘어진 청춘들을 깨운다. 부시시한 눈으로 차창 밖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혹시나 청춘의 고뇌를 달래줄 고래의 흔적을 찾았다. 신화처럼 숨쉬는 고래는 가슴에 살아 남아 그리움이 됐다.

오리건주 태평양 연안을 끼고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소도시들이 있다. 오리건 해안을 여행하면서 젊은 청춘을 달래주던 동해바다를 닮은 곳을 찾았다. 해뜨는 곳과 해지는 곳이 맞닿은 느낌의 바다였다. 오리건주 태평양 연안 중간에 위치한 뉴포트(Newport)시다.

인구 1만여명의 뉴포트는 오리건주 최대 어항이지만 고풍스럽고 서정적인 곳이다. 국립 해양 대기청(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NOAA) 연구선의 모향이며 해양경찰 기지와 NOAA 수산 과학센터, 해트 필드 해양 과학센터(Hatfield Marine Science Center)가 있는 해양연구의 보고이다.

뉴포트 주변 해변에서는 조개를 줍거나 산책을 할 수 있고 낚시면허를 구입하면 대게와 모래사장과 갯벌에서 조개류를 잡을 수 있다. 또한 이곳은 멕시코에서 새끼를 낳은 흑등고래 등 1만 8000여 마리의 고래들이 알래스카로 이동하는 길목이고 해안에 서식하는 고래도 약 200여마리로 추정한다.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직접 관찰하기도 하고 해안에서 고래의 이동을 지켜 보기도 한다.

뉴포트는 1992년 '프리 윌리' 영화에 출연했던 범고래 '케이코'가 아이슬란드 고향으로 돌려보내지기 전 1998년부터 몇 년간 적응훈련을 한곳으로도 유명하다. 케이코는 1977년쯤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생포되어 멕시코의 멕시코시티로 팔려가 고래 쇼를 하는 신세가 됐다. '프리 윌리' 영화가 흥행하자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케이코를 영화처럼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풀에 갇혀 사육되면서 피부 손상, 소화불량, 근육 퇴화 등으로 야생에서 살 능력을 잃어버린 게이코는 뉴포트에서 1998년부터 2002년 여름까지 적응훈련을 거친 후 아이슬란드 바다로 공수됐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인간의 손에 길러졌던 탓에 6주 만에 노르웨이의 스칼비크만까지 1400km가 되는 거리를 헤엄쳐 되돌아왔다. 그리고 평생 혼자 수조 속에서 살다가 2003년 12월 12일 폐렴으로 27살(추정나이)에 숨졌다.

멀리서 대형고래가 숨쉬며 내뿜는 포물선을 바라보는 것은 감격스러운 경험이다. 고래가 있는 뉴포트의 바다는 고뇌와 방황으로 혼란스러웠던 젊은 날의 초상을 위로할 만한 곳이다. 고래가 지나가는 먼바다를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본다.
도널드 데이비스 파크에 있는 고래 무덤.

도널드 데이비스 파크에 있는 고래 무덤.

영화 '프리 윌리'에 출연했던 범고래 케이코.

영화 '프리 윌리'에 출연했던 범고래 케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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