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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떠나고 싶다”…부자들의 이민 티켓은 ‘미국과 싱가포르’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6/15 23:30

주말마다 투자이민 공부하는 자산가들
자녀 취업위해 부모가 미국 영주권 투자
상속세 없고 법인세 낮은 싱가포르 인기
대주주는 이민 가려면 국외전출세 내야
“자본유출 막으려면 기업하기 좋은 환경”





최근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이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주말마다 서울 곳곳에서는 투자 이민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미국 투자이민 설명회. 미국 영주권에 관심있는 30여명만 초청해 투자이민 방법을 알려주는 자리였다. 참석자는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온 가족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70대까지 다양했다. 이곳 뿐이 아니었다. 이날 서울에서 열린 미국 투자이민 설명회만 5개였다.

설명회에 참석한 70대 자산가는 “최근 국내 경제는 불안하고 세금 부담은 갈수록 커져 이민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당장 떠날 생각은 아니지만 공부하는 차원으로 주말마다 설명회를 다닌다”고 말했다.

박승안 우리은행 TC프리미엄 강남센터장은 “고액 자산가의 경우 자녀들이 대부부 해외에서 공부하거나 취업했기 때문에 부동산 등 재산만 정리되면 한국을 떠날 마음이 있다”며 “높은 세금을 피해 이민을 고민하는 부자들이 늘고 있다”고 얘기했다.

이민을 고려하는 자산가들의 행선지로 가장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곳은 미국과 싱가포르다.




15일 서울 서초동에서 열린 미국 투자이민 설명회. 자녀 교육과 취업 목적으로 영주권을 따려는 사람들의 관심이 많았다. 염지현 기자






‘6억원’ 미국행 티켓 막차 타려는 부모들

최근 미국행을 고려하는 사람들의 주요 관심은 투자이민(EB-5)이다. 학력과 영어점수, 투자액 등을 점수로 매기는 호주나 캐나다와 달리 50만 달러(약 6억원)를 투자해 일자리를 만들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어서다. 올해 9월 이후 투자이민 최소 투자금액이 오를 수 있어 인상 전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몰리고 있다.

해외이주알선업체인 고려이주공사의 정이재 이사는 “연말 이후 투자금이 최대 135만 달러까지 오르고 투자 지역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투자이민 문턱이 더 높아지기 전에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는 고객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말했다.

투자이민 신청자의 상당수는 자녀 교육을 위해서 미국행을 고민한다. 부모 중 한 명이 영주권을 받으면 배우자는 물론 21세 이하의 자녀도 함께 영주권이 발급되기 때문이다.

사업가 김 모(51)씨는 “미국에서 유학 중인 아들을 위해 투자이민을 알아보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정책으로 취업이민이 어려워져 만약을 대비해 자녀가 대학 졸업하고 직장까지 구할 수 있도록 영주권을 받아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 비자 발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투자이민 비자를 발급받은 한국인은 531명이다. 1년 전보다 336명이 늘었다. 투자이민 발급 국가 중 한국은 중국, 베트남, 인도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싱가포르는 치안과 교육, 세금이 낮아 세계 백만장자들이 모여드는 도시 중 하나다. 최근 한국에서도 상속세 부담으로 싱가포르에 눈을 돌리는 CEO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연합뉴스]






상속세 없는 싱가포르에 모여드는 기업가

이민을 고려하는 사업가들이 선호하는 곳은 싱가포르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6시간 거리로 가깝고 세금 부담이 낮기 때문이다. 상속ㆍ증여세도 아예 없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 세율(명목 기준)이 50%에 달해 세금 낼 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국내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겐 상당히 매력적인 도시다.

박범준 코트라 싱가포르 무역관 과장은 “싱가포르는 법인 설립이나 운영에 제도적 뒷받침이 잘 돼 있다”면서 “법인세도 한국보다 낮은 17% 정도로 세금 부담이 낮아 싱가포르에 한국 기업들의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가 뿐이 아니다. 싱가포르는 세계 백만장자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선호하는 도시다. 자산리서치업체 뉴월드웰스와 아프라시아은행이 내놓은 ‘부의 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00명의 백만장자가 싱가포르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좁은 땅에 자산가들이 몰리면서 싱가포르 영주권을 따려는 경쟁은 치열하다. 현재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영주권을 받으려면 새로운 기업이나 펀드에 250만 싱가포르 달러(22억원)를 투자해야 한다. 돈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사업 능력도 따진다.

10년 넘게 싱가포르 투자이민을 대행해 온 업체 담당자는 “적어도 연간 5000만 싱가포르 달러(약 433억원) 이상 매출을 올린 사업체를 운영한 경험과 이를 뒷받침하는 실제 서류가 있어야만 이민을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공한 기업가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의미다.




OECD 상속세율






국적포기세에 이민 포기하는 기업가들




지난해부터 대주주가 이민을 가면 보유한 주식에 세금을 매기는 국외전출세가 도입됐다. [중앙포토]






이처럼 한국을 뜨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에 이민을 포기하고 한국에 주저앉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도입된 국외전출세다. 법인을 운영하는 대주주가 이민 등으로 한국을 떠날 때 보유한 주식에 세금을 물리는 제도다. 실제 주식을 양도하지 않았더라도 출국일 기준으로 주식 평가이익에 양도소득세율 20%(과세표준 3억원 초과분은 25%)를 적용한다.

미국이 2008년부터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포기하면 세금을 물리는 국적포기세와 비슷하다. 조세회피처로 거주지를 옮기는 역외 탈세를 막기 위한 제도다.

단 국외전출세 납세대상은 코스피ㆍ코스닥 구분없이 시가총액 15억원 이상을 보유한 대주주다. 비상장 중소기업을 운영하더라도 대주주라면 과세 대상이다.

양경섭 세무법인 서광 세무사는 “지분을 정리하지 않더라도 양도세를 내려면 추가 자금을 마련해야 하고 세율도 높다”며 “초반에 이민에 관심을 보였던 CEO가 국외전출세 때문에 이민 계획을 미루거나 포기한다”고 말했다.

역외탈세 감시망은 점차 더 조여지고 있다. 출국일 전날까지 주식 보유현황신고서를 내지 않으면 2% 가산세가 부과된다. 또 올해부터는 부동산 주식도 과세 대상에 포함됐다. 부동산 자산 비율이 50% 이상인 법인의 대주주도 국외전출세를 물어야 한다.

해결책은 싱가포르처럼 “기업하기 좋은 환경”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 비용은 오르고 투자는 움츠러들면서 국내에서 기업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이 ‘이민’으로 표출되고 있다”며 “자본 유출을 제도적으로 막기보다 정부가 나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장섭 싱가포르대 경제학 교수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해외로 나가려는 부자와 기업가만 탓할 수 없다”며 “무엇보다 중견기업 CEO들이 해외로 눈 돌리기 전에 상속세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 공익재단을 통한 경영권 승계 등 구체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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