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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주인공 이름이 없는 소설

시인과 시 쓰는 사람은 다르다. 누구나 시를 생각하고 시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일정한 등단절차를 밟아야 한다. 소설가와 소설 쓰는 사람의 영역도 애매하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추천을 받거나 신춘문예 등 현상 작품 모집에 당선되어야 소설가라고 불릴 수 있다. 이런 절차 없이 소설을 내서 전문 비평가나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을 발표해도 '소설가'라고 불러 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시인.소설가.화가.음악가 등의 명칭은 기준이 애매하다. 스스로 "내가 시인인지" "화가인지" 판단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요즘 주인공 이름이 없는 소설을 읽고 있다. 작년도 'The Man Booker' 상을 받은 'Anna Burns'의 'Milkman'이다. 어떻게 소설에 주인공 이름이 없을 수 있을까. 소설은 주인공의 성격묘사나 대사를 통해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야기를 읽고 나서 주인공을 머리 속에 그리면서, 연민의 감정, 아쉬움, 미움까지 느끼게 하는 것이 진정한 소설이 아닌가. 고전을 보더라도 '노트르담의 꼽추'의 콰지모도, '제인 에어'의 제인, '주홍글씨'의 Hester는 수세기 동안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저자의 이름은 생각하지 못해도 주인공 이름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Milkman'은 등장 인물을 'Middle Sister' 'Milkman' 'Maybe-boyfriend' 'Maybe-girlfriend' 지명을 'Over-the water' 'Over-the road'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어 소설은 구체적인 이름을 표시해도 잊어 버리기 쉬운데 'Milkman'등으로 부르면 어떻게 독자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아마존 북 리뷰를 보았다. 많은 독자들이 혹평했다. 주인공 이름이 없는 이상한 소설, 편집을 너무 빡빡하게 해 숨쉴 여유가 없는 책, 너무 지루해 중간에 포기했다는 독자가 많았다. 아이리시 작가의 영어가 일반적인 미국 독자들이 사용하는 영어와 많이 달라 이해가 쉽지 않다는 불평도 있었다. 그러면 왜 이 소설이 노벨 문학상 다음으로 권위 있다는 'Man Booker' 상을 받게 되었을까. 기존 소설의 틀을 과감하게 깬 실험소설이기 때문에 크레딧을 준 것 같다. 신춘문예 시나 소설 당선작이 실험작품에 많이 주어지듯 이 문학상도 파격성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은 350페이지 정도 밖에 안 되지만 다른 소설 500페이지 보다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소설은 주인공을 통해 말한다. 옛날 소설은 주요 등장 인물이 많아 읽다가 누가 누군지 미로를 헤매는 경우가 많았다. 박경리의 소설 '김 약국의 딸'도 여러 딸과 사위들이 등장해 독자들은 누구 딸 이야기인지 혼돈스러웠다는 비평가의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요즘 소설은 두 주인공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이면서 국제적으로 좋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소설들이다. 'The German Girl'은 'Anna'와 'annah' 'The Invention of Wings'는 지주의 딸인 'Sarah'와 한 때 그녀의 몸종이었던 'Handful'이 주고 받는 편지 형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다. 내 소설 'Who Killed The Hummingbird' 역시 주인공 박영민과 엘리나 레이놀즈가 번갈아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나는 문학을 정식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난해한 실험작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내 수준을 의심해도 어쩔 수 없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주인공 이름이 없는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 눈물을 흘리게 하는 소설, 오래 마음 속에 남아 영혼을 맑게 해 주는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을 더욱 갖게 된다. 유명한 시인이나 소설가가 쓴 작품이 아니더라도 심금을 울려 주는 글을 읽고 싶다.


최복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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