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기자칼럼]종교와 신앙

이슬람의 금식성월 ‘라마단’이 종료된 지도 열흘이 지났다. 5월 6일 일출부터 6월 4일 일몰까지 한달 동안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 식음을 포기한 채 유일신 ‘알라’의 자비를 구했다.

보통 갈은 시기에 기독교인들은 ‘춘계 부흥회’를 연다. 3~4일 간 지속되는 부흥회 기간 동안 늦은 저녁과 새벽을 마다 않고 집회를 가지며 통성으로 기도한다. 간혹, 무슬림과 크리스챤 사이에는 상대방의 개종을 바라는 기도(회)가 화자되기도 한다. 두 종교가 ‘구약성서’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다.

‘구약성서’는 유일신인 창조주와 피조물인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정의’이자 삶의 목적과 의미, 그리고 방향성에 대한 ‘지침’이다.

사람은 왜 신을 찾는가? 답은 의외로 간단한다.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 부르지만 인간은 실제로 나약하기 때문이다. 산다는 일의 고단함 앞에 무기력하게 노출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지.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망치고 굶게 되는 이치, 폭염이나 혹한을 견딜 수 없는 신체적 한계, 홍수나 지진 등의 자연재해 앞에 드러나는 나약함 등 삶이 인간에게 내던지는 변수는 무궁무진하다.



기우제를 드리고 제물을 바쳐 신의 노여움을 풀고 음악과 노래와 춤으로 정성을 다해 ‘신’을 칭송한 태고의 흔적들을 보면, 무자비한 삶의 질서 앞에 살고자 노력한 인간들의 절실함이 드러난다. 그러한 절실함들이 교리로 정리되고 종교음악으로 태어나고 대성당과 성화로 거듭났다.

그 후로 수 세기를 지나오며 지식의 축적과 문명의 발달에 따라 사람들은 르네상스와 인본주의, 정교분리를 도출해냈다. 그리고 또 끊임없이 문명의 이기를 개발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로켓을 쏘아올리고 통신망을 구축하고 로봇을 만들고 유전자를 조작하고 인공지능을 만들며 그 어느 때보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수준까지 왔다.

그러면서 인간의 나약함이 해결됐는가 하면 딱히 그런것도 아니다. 여전히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약하고 유한하다. 눈부신 기계문명의 발달이 오히려 정신을 갉아먹어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각양각색의 ‘중독’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여전히 혹은 아직도 종교에 의지한다.

개신교와 천주교를 포함한 기독교, 이슬람, 힌두, 불교 등 특정 종교에 자의로 귀의했든 유일신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 부르셨다고 믿든 개인의 자세는 각자의 책임이다. 어떤 교리든 학문적인 지식 습득에 머물 것인지 ‘종교’를 넘어 일상의 매 순간 내 행동의 기준이 되는 ‘신앙’으로 믿을 것인지는 선택이다.

다만, 무엇을 선택하든지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라는 태도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남들처럼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고 부흥회도 가는데, 기적은 차치하고라도 삶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궁극적인 세계관마저 수립할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을 도대체 왜 믿고 있는가’를 한 번쯤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김은정 기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