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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할머니의 '첫 사랑'

정현숙 / LA
정현숙 / LA 

[LA중앙일보] 발행 2019/06/20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6/19 18:31

어렸을 때는 빨리 키가 크고 나이가 많아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이가 좀 천천히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다가 요즘은 누군가가 내 나이보다 젊게 보아주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어올 때 "78세인데요" 하면 "어머나! 참 젊어 보이세요, 전 70도 안 되신 줄 알았어요"라고 하면 인사치레로 한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기분이 좋다. '아직은 내 나이보다 젊게 보아주는군'하며 자부심으로 으쓱해 지기도 한다.

나는 손자가 너무 빨리 와 주어서 일찍 할머니 소리를 듣게 되었다. 1991년 큰딸이 첫 손자를 안겨주어 나는 할머니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손자 이름을 붙여서 "OO 할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 내 나이 50세. 할머니라고 불리기엔 너무 젊은 나이였다.

미국에 온 나의 형제들 중에서 내가 제일 처음 할머니가 되었고 내 형제들도 덩달아 할머니 할아버지 반열에 올라섰다. 미국에 살고 있는 10명이 넘는 조카들 중에서 처음 태어난 아이가 내 손자다.

처음 태어난 아기를 보기 위해 조카들이 모여들었고 자기들의 호칭도 이모, 삼촌이 되었다고 좋아했다. 그때 찍은 사진 중에서 아기를 가운데 뉘어놓고 이모 삼촌이 된 조카들이 빙 둘러앉아 별나라에서 온 어린 왕자님을 알현하듯이 무릎 꿇고 엎드려 들여다 보는 사진을 보며 첫 손자로 태어난 그 녀석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그 후 작은딸이 두 번째로 손자를 보게 해줄 때까지 6년 동안 그 녀석은 첫 손자의 왕좌를 만끽하고 있었다. 직장 생활하는 딸 대신 몇 년 동안 나에게 안겨온 첫 손자와 많은 사랑을 나눴다. 그렇게 우리는 단짝이 되어 사랑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 손자가 올해 28세로 중국에 간지 3년째다. 큰 목표 가지고 갔으니 잘 이루고 오리라 생각한다. 가끔 전화기를 통해 "할머니"라고 부르는 손자의 목소리를 들으면 첫사랑 애인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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