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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어머니에게 바치는 노래

얼마 전 참석했던 한 장례식장에서 맏상제 역할을 하던 아들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며 조가를 하겠다고 나섰다. 환갑을 훌쩍 넘은 아들은 90세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게 바치는 노래를 연주하기 위해 악기도 하나 샀다고 했다. 알토호른(Alto Horn)이라는 악기였다. 입술의 떨림에 담긴 호흡이 좁다란 관을 통해 나가다 둥그런 원을 따라 돌면서 부드러운 음색으로 뿜어져 나오는 악기다.

아들은 악기를 연주하기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이 노래는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셨던 노래입니다. 아시는 분은 따라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몇 번 호흡을 가다듬더니 첫 음이 흘러나왔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고향의 봄' 멜로디가 알토호른의 푸근한 음색에 담겨 나오자 조문객들은 조용한 목소리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저마다 고향이 그리웠는지 숨을 멈추고 따라 하는 이도 있었고, 눈물을 흘리며 따라 부르는 이도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는 아들의 눈가에는 이미 촉촉한 이슬이 맺혀 있었다.

고인은 90년 전 만주에서 태어나 해방되던 해인 1945년 황해도 해주로 내려왔고, 한국전쟁 중에 남한으로 피란 내려와 인천에 정착했다고 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이 모두 그랬던 것처럼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혼란기를 지나 한국 근대사의 어수선함을 온몸으로 마주해야 했다. 마흔다섯 되던 해인 1974년 미국에 이민 와 마흔다섯 해를 미국에서 살다 세상을 떠났으니 인생의 절반을 만주와 한반도에서 보냈고, 나머지 절반은 미국에서 보낸 셈이다.



가족들만 모여 치르는 정갈한 장례식에서 고인의 아들이 연주하는 '고향의 봄'을 따라 부르며 인생에 대해, 고향에 대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가 고향을 떠난 이들이었다. 고향을 그리워할 자격은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나 되는 것처럼 마음껏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고인의 어머니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았을 것이다. 갈 수 없기에 커지는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이 노래를 흥얼거렸을 것이다. 아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던 어머니의 그리움을 연주하는가 싶더니 어느 틈엔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그에게도 어머니가 고향이었던 게다.

나름 오랫동안 악기를 연주하던 아들이었지만 이 날만큼은 그의 악기 소리가 유난히 떨렸다. 그 떨림은 고향 떠난 이들의 한숨이었다. 그 떨림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었다. '어머니'라는 고향을 잃은 아들이 '어머니에게 바치는 노래'였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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