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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저항의 상징' 빅토르 초이의 음악과 사랑

김 정 / 영화평론가
김 정 / 영화평론가

[LA중앙일보] 발행 2019/06/22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19/06/21 19:30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빅토르(오른쪽)와 나타샤.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빅토르(오른쪽)와 나타샤.

레토(Leto)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주연: 유태오, 로만 빌릭, 이리나 스타르셴바움
장르: 뮤지컬, 드라마
등급: NR
상영시간: 126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하고 페레스트로이카가 본격적으로 진척될 즈음 레닌그라드의 젊은이들을 열광케 한 것은 다름 아닌 미국과 영국의 록음악이었다. 그들은 록, 펑크, 뉴웨이브 등의 음악 장르를 섭렵하며 개혁의 바람과 함께 찾아온 자유주의 물결에 흡입되고 있었다.

사랑과 젊음, 그리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러시아 청년문화를 새롭게 형성하고 있을 때, 그 중심에 서있던 인물이 고려인 3세 빅토르 초이(Viktor Tsoi)였다. 시대를 대표하는 그룹 '키노(Kino)'의 리더 빅토르 초이는 28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요절하기까지 독보적인 수퍼스타의 위치에 있었다. 러시아 문화평론가들은 옛 소련이 붕괴된 원인 중 하나로 페레스트로이카 시절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른 빅토르 초이의 음악을 꼽는 이들이 많다.

러시아 대중음악의 전설적 존재인 빅토로 초이(1962- 1990)의 죽음 이후 KGB 관련설이 심심찮게 떠돌았다. 그를 비롯한 당대의 록 뮤지션들 중에는 단명하거나 러시아를 떠나버린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빅토르 초이의 멘토이기도 했던 마이크 나우멘코 역시1992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레토(여름)'는 빅토르 초이(유태오)가 대중의 폭넓은 인기를 얻어 국민 영웅으로 떠오르기 전, 마이크를 처음 만나 교류하며 지냈던 1981년의 여름을 시대배경으로 한다.

1981년의 레닌그라드. 러시아 록 음악사(史)에는 빅토르 초이가 있기 전, 넘치는 카리스마로 대중을 사로 잡았던 마이크 나우멘코가 있었다. 아직 앳된 청년인 빅토르는 자신보다 앞서 러시아의 초기 록음악을 일궜던 마이크의 그룹에 일원으로 참여하며 음악적 교류를 나눈다. 두 남자 사이에는 마이크의 아내이며 이들의 영원한 뮤즈인 나타샤가 있다. 영화는 이들 세 명의 중심 인물 사이에서 오갔던 우정과 '나눔'의 공감대를 중점적으로 조명한다. 그러나 통념적 삼각관계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자유주의를 추구하며 보헤미안적 성향이 짙은 마이크는 나타샤가 빅토르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두 사람의 로맨스를 허락한다.

'레토'를 연출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반정부적 성향으로 인해 푸틴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인물이다. 촬영 막바지에 그가 공금횡령 혐의를 받아 가택 연금되는 사태까지 발생했지만 다행히 영화는 제작을 마치고 지난해 칸영화제에 초정되었다. 레토는 그날 12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독일 태생의 한국인 배우 유태오는 레토에 캐스팅이 되고서야 러시아어와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외모엔 특유의 멜랑콜리가 있다. 왠지 모를 그의 우울한 감성은 빅토르 초이를 연기하기에 최적의 분위기다. 2000여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그를 캐스팅한 이유이다. 영화는 흑백으로 편집됐다. 종종 재미있는 캡션과 그래픽 컬러 이미지들이 화면에 등장해 경쾌한 판타지 뮤지컬로 전환된다. 오랫동안 스테이지 연출을 한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아방가르드적 감각이 돋보이는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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