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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세스피 온천' 가는 길

황상호 / 사회부 기자
황상호 / 사회부 기자 

[LA중앙일보] 발행 2019/06/24 미주판 19면 기사입력 2019/06/23 00:20

웬만해서 공개하고 싶지 않은데, 독자들께만 공개한다. 주변에 절대 공유하지 마라. 끝내주는 곳이다. LA에서 북쪽으로 98마일, 차로 2시간 거리에 자연보호구역인 세스피 와일더니스가 있다. 벤투라카운티 오하이 북쪽으로 멸종 위기동물인 대형 독수리 콘도르가 서식하는 곳이다.

오전 10시 아내와 함께 주차장이 있는 피에드라 블랑카 트레일 헤드를 출발했다. 길은 어렵지 않다. 고도 3070피트에서 2500피트까지 천천히 내려가다 다시 3100피트까지 올라간다. 세스피는 전형적인 사암지대다. 키 작은 관목들이 탈모가 온 아저씨 머리처럼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그 사이 핀 야생화를 보는 것이 꿀재미다.

이곳은 원주민 추마시의 영토였다. 보석을 가공하는 사람들이란 뜻인 추마시 부족은 세계가 삼등분해 있다고 믿었다. 거대한 뱀이 떠받치는 중간계, 독수리가 지키는 천상계, 지하세계에는 추악한 생명체인 누나시스가 우글거린다고 생각했다. 누나시스는 밤이 되면 중간계로 올라와 인간을 괴롭히고 병들게 한다. 그때면 올빼미가 비상해 인간을 보살핀다고 믿었다.

오후 5시쯤 중간지점인 윌렛 캠핑장에 텐트를 쳤다. 당구장하면 짜장면이듯 산에서는 고기를 먹어야 한다. 맛이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의식이다. 얼려온 양념고기를 구워먹고 0.5마일 걸어 윌렛 온천에 도착했다. 음침한 수풀 사이로 자연 온천수가 대형 고무튜브에 흐르고 있었다. 하이커들은 '홀리 워러(Holy Water)'라며 손으로 물을 떠서 얼굴에 쪼르르 끼얹었다. 초록빛 온천탕, 다큐멘터리에서도 보지 못한 장면이다.

이튿날 새벽 4시에 일어나 세스피 온천을 향했다. 깊고 너른 초원에서는 새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출발지에서 7마일을 걸어 세스피 온천에 도착했다. 온천이 시작하는 암벽 주변에는 수증기가 뭉게 뭉게 피어올랐다. 용이라도 살고 있나. 영생을 할 수 있다는 신비의 약초가 있다면 바로 이곳일 것이다. 온천수에 손을 가져댔다. 아이쿠, 화들짝 놀라 귀를 잡았다.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웠다. 조금 내려와 차가운 계곡물과 뜨거운 온천수가 만나는 지점에 몸을 넣었다. 온천수는 유리알처럼 투명하며 거위털처럼 포근했다. 신들의 정원에 몰래 들어왔나 겁이 났다.

트레일 헤드로 향했다. 남은 거리 15마일. 무거운 배낭에 어깨가 짓눌리고 골반이 절그럭거렸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등산화를 신고 강물을 건넜다. 등산화는 질퍽 질퍽 물을 계속 토해냈다. 오후 6시쯤 도착했다. 무사히 복귀한 것에 모든 것이 감사했다. 당일 하루에만 22마일을 걸었다.

하지만 한 시간 가령 앞서 가던 한인 부부가 보이지 않았다. 차에 내려놓은 짐도 없었다. 곧 있으면 해가 진다. 실종인 건가. 그 찰나, 길에서 만난 카우보이가 너희 친구를 찾았다며 말을 타고 나타났다. 부부는 길을 잃고 다른 트레일에 있었던 것이다. 아, 살았다. 중간계를 보살피는 추마시의 올빼미가 날아올랐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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