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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평가(評價)가 아프다

평가는 시험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어쩌면 태어나서부터 수많은 평가 속에서 숨 막히게 살아온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평가의 연속입니다. 주로는 내가 남을 평가합니다. 이건 좋고, 이건 나쁘고 하면서 평가를 합니다. 하루 온종일 평가로 둘러싸인 삶입니다. 매우 주관적이지요. 우리는 분명히 주관적인데도 객관적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누가 평가하더라도 나처럼 평가할 거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평가에 대해서 자신감이 넘쳐납니다. 자신의 평가를 철석같이 믿는 것은 위험한 태도입니다.

반면 자기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극단을 달리기도 합니다. 한없이 관대하기도 하고 잔인할 정도로 비관적이기도 합니다. 이 역시 주관적입니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이 나라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 속에도 수많은 빈 공간이 있습니다. 감정의 상태에 따라서도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집니다. 기분에 좌우된다고나 할까요? 기분이 좋으면 후(厚)하고, 기분이 나쁘면 박(薄)해지는 게 나의 평가입니다. 얼마나 주관적입니까?

평가(評價)의 한자를 보면 말을 공평하게 하는 겁니다. 나에 대한 기준과 남에 대한 기준이 기울어져 있다면 옳은 평가가 될 수 없습니다. '옳은'이라는 말보다는 '좋은' 또는 '선한'이라는 말이 적절할 듯합니다. 상대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마치 많이 아는 듯이, 모두 다 아는 양 말하는 것은 정말 위태롭습니다. 수많은 편견과 선입견이 개입되어 판단을 망칩니다. 그리고 잘못된 판단는 그대로 상처가 됩니다. 받은 이에게도 준 이에게도 잘못 날아가 박힌 상처입니다. 상처는 흉으로 남아서 오랜 기간 자꾸만 들여다보게 됩니다. 볼 때마다 더 아파지기도 합니다. 상처가 덧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스스로 날카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걸 우리는 포장해서 이성적이라고 합니다. 이성적이라는 말이 때론 칼끝 같은 날카로움이 됩니다. 남에 대해서는 전보다 조심스럽지만 여전히 비평의 날을 세웁니다. 비평과 비난의 경계를 오갑니다. 그에게 도움이 될 거라 믿으며 날을 들이대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움이라는 판단은 그가 하는 겁니다. 깨닫습니다. '내가 잘 모르고 있구나. 상처를 주었을 수 있겠다.' 그동안 내가 건넸던 무수한 충고, 비판이 불안합니다.



나에 대한 마음도 전과 다릅니다. 이제 멋모르는 자신감이나 필요 이상의 과대평가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허나 혹시라도 그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애정마저 식는다면 삶은 겨울이 됩니다. 다시는 꽃이 피지 않습니다. 계속 찬바람이 붑니다. 혼자서 처량하게 들판에 서 있습니다. 오늘 내린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나를 더 외롭게 합니다. 나를 가엾게 만듭니다. 저는 저를 평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안아 주고 싶습니다.

타인에 대한 마음도 같은 방향입니다. 날을 거두고 함께 느끼는 공감이고 싶습니다. 남을 평가하는 삶이 아니라 남을 사랑하는 삶이고 싶습니다. 그의 속에 있는 가치를 발견하고 내 속의 가치를 발견하여 '서로 함께'라는 공감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평가는 공감 속에서 한 단계 아름다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평가의 시작점이 달라져야 합니다.

따뜻하게 서로를 인정해 주는 평가는 어떨까요? 서로의 긍정적인 부분을 돋보이게 하는 평가는 어떨까요? 사랑 가득한 따뜻한 평가 말입니다. 새로워진 평가를 기대해 봅니다. 저는 오늘도 평가가 무척 아픕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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