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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화두 수행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LA중앙일보] 발행 2019/06/25 종교 26면 기사입력 2019/06/24 18:03

"언어도단의 입정처(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고요한 자리)" "유무초월의 생사문(있는 것과 없는 것을 넘어선 생과 사의 관문)" "무시무종(無始無終ㆍ시작과 끝이 없다)" "부모의 몸을 받기 전 몸은 어디에 있었나?" "색즉시공 공즉시색(형상 있는 것은 다 공한 것이고, 공한 것이 곧 형상 있는 것)"

불교 공부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어디에선가 한번쯤은 접하셨을 법한 법문들이다.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감조차 잡기 어렵다.

교도님들과 함께 공부를 하다 보면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면 좋을 텐데, 왜 이렇게 어렵게 말씀을 하셔 놓고 뜻을 연구해 보라 하셨는지 모르겠다"며 불평 아닌 불평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성현의 말씀을 전하는 입장에서도 나름 수긍이 가는 불만이다.

산 정상에 오르거나 멋진 풍광을 보면 보통은 감탄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언어 감각이 특출한 시인이라도 본인이 느낀 감동의 몇 퍼센트나 표현할 수 있을까? 비교적 객관적인 표현이 가능한 사실관계나 학문적 사유도 일단 언어로 표현되면 주관성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물며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에서야 언어의 비효용은 말해 무엇하랴. 언어가 갖는 표현의 한계가 음악이나,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장르 탄생의 근본적 이유라 해도 지나친 억측은 아닐 것이다.

애매하고 추상적이기로 하면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진리를 표현하는데, '1+1=2' 같은 간단하고 명확한 수학적 논리가 충분할 수 없는 이유이다. 성현의 말씀대로, 천하의 큰 도(가르침)는 평이 간명해야하지만 이성과 논리만으로 진리의 궁극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이다.

성현이 나기 전에는 도가 하늘에 있고, 성현이 나신 후에는 도가 성현에 있고, 성현이 가신 뒤에는 도가 경전에 있다는 말도 있지만, 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기에 행간의 본의를 읽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성현의 깨달음을 담은 경전이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극언을 전적으로 부정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불가에서 특별히 경계하는 언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데 유용한 공부법인 화두 수행은 연구의 깊은 경지를 밟는 공부인이 정신 기운이 맑을 때 행하는 공부이다.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고. 이제부터는 이런 아리송한(?) 스님의 법문을 들을 때 짜증스러워 하지 말고, 깨달음을 도와주는 도우미로 생각하고 틈틈이 어린 시절 수수께끼 푸는 심경으로 편하게 정답을 찾아보자.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 일심집중, 지혜연마, 선심증득 등의 효과들이 절로 얻어질 것이다.

drongiand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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