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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어떤 인연에 대하여

남가주에서 교인 수백 명이었던 교회를 3000명 이상의 교회로 성장시킨 젊은 목사가 최근 설교에서 미국 유학 후 남가주에서 목회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준 특별한 인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부산에서 신학대학을 마친 후 학사 장교로 복무한 뒤 서울의 한 교회 부교역자로 일하게 되었다. 처음 부임하여 토요일 오후가 되자 부교역자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모두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의아해 하며 앉아 있는데 60대 초반의 한 남자가 들어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를 통해 왜 자기가 사무실에 혼자 남게 되었는지 알게 됐다.

그는 장로이고 오랫동안 호주에서 이민생활을 한 후 고국이 그리워 역이민했다. 한국인 특유의 외국에서 살았던 사람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항상 외로우셨단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만 되면 교회에 와서 부교역자를 앉혀놓고 두 시간 이상 이야기하는 것이 그의 낙이고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그는 외로운 장로님의 친구가 되어 주기로 마음을 정했다. 토요일 오후마다 K장로를 반갑게 맞아주고 커피를 대접하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렇게 2년이 흘러갔다.



신학교 시절 꿈이었던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공항에서 멀리 서 있는 K장로를 보았다. 그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다가가서 손을 꼭 잡았다. "장로님, 전화하셔서 얘기하면 되지요."

미국 유학생활 중 정말 전화가 왔다. 한 달에 몇 번씩 전화가 와서 한 시간 이상 이야기했다. 바쁜 유학 생활이었지만 외로운 그를 생각해 다 들어주었다. 유학생활을 마칠 때가 되니 아내와 두 딸이 미국생활을 너무 좋아하고 있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서 여러 교회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이력서를 보냈지만 하나도 응답이 없었다. 이제 짐을 꾸려야 했다. 아내와 두 딸이 너무 실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짐을 꾸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K장로였다. 장로님은 금방 내 상황을 알아차렸다.

"목사님,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목소리가 왜 그러세요?" 하는 수 없이 그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실망한 아내와 두 딸의 얼굴을 보는 것이 괴롭다고 했다. 아마 어디에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그가 말했다. "목사님 전화 끊고 1시간 뒤 다시 하겠습니다." 전화는 또 무슨 전화라고 생각하며 다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다시 전화가 왔다.

그의 목소리가 밝았다. "목사님 LA에 있는 P교회를 찾아가 보세요. 그곳에서 목사님을 부교역자로 모시기로 했습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K장로가 호주에서 사업을 할 때 호주에 유학 온 한 신학생을 오랫동안 도와주었는데, 그가 떠나며 "장로님 어떤 소원이라도 한가지는 들어 드릴 테니 필요할 때 전화하세요"라고 했단다. 그가 지금 LA에서 제법 큰 교회를 목회하고 있어 부탁했다며 가면 된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남가주에서 목회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담담히 이야기하는 그의 아름다운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교인들에게 주는 울림은 컸다. 그 후년 그는 남가주 교인들에게 따뜻하고 진정한 설교로 감동을 주고 외국생활에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좋은 설교자가 되었다. 성경의 "심은 대로 거두리라"라는 말이 실현된 것이다.


최성규 / 베스트영어훈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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