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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그래도 산이 좋아

[LA중앙일보] 발행 2019/07/05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7/04 13:09

조선 선비들은 산을 관산(觀山), 유산(遊山), 요산(樂山)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멀리서 바라보기, 찾아가서 유람하기, 좋아해서 즐기기라는 말이다. 그래서 '오른다, 정복한다'는 느낌이 강한 등산(登山)이라는 말은 잘 안 썼다. 대신 '안긴다, 들어간다'는 뜻의 입산(入山)을 더 많이 썼다. 선조들의 이런 생각을 좇아 나도 가능하면 자주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보고, 직접 찾아가서 살피고, 있는 그 자체로 산을 즐기려 한다.

이것 말고도 나대로 산을 찾는 이유가 또 있다. 무엇보다 산행 뒤의 성취감이다. 쉽지 않은 일을 땀과 수고 끝에 이루고 난 뒤에 밀려드는 뿌듯한 감정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일주일 내내 세상 잡사에 골몰하느라 찌든 심령을 씻어 낸 듯한 해방감과 청량감도 웬만하면 주말 산행을 거르지 않으려는 이유다.

최근 좀 멀리 블랙엘크피크라는 곳에 다녀왔다. 전에는 하니피크라 불리던, 사우스다코타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그래봤자 해발 7244피트밖에(?) 안 되지만 그럼에도 미국에서 로키산맥 동쪽에선 가장 높은 산이어서 꽤 유명세가 있다. 명승지 블랙힐스 일대 커스터주립공원 안,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실반호수에서 출발하면 2~3시간이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그곳에 갔다가 하산 길 8부 능선 쯤 되는 곳에서 부상자를 구조해 내려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발을 삐었는지 거의 걷지 못하는 여성이었다. 구조대는 한쪽 바퀴만 달린 들것에 그녀를 태우기도 하고, 가끔은 부축도 하면서 가파른 등산로를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을 뒤로 하고 먼저 내려오게 되었는데 산 중턱 쯤엔 골프 카트 닮은 산악용 특수 차량 두 대가 올라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 아래까지 다 내려오니 거기에도 앰뷸런스와 911 구급차, 셰리프, 공원경찰(파크레인저)까지 다 모여 있었다. 한 명의 조난자를 구조하기 위해 관련 기관들이 총출동한 것이다. 단 한 명일지언정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가능한 수단은 다 동원하는 미국 시스템의 단면을 확인한 현장이었다.

며칠 전 LA인근 마운트 워터맨에서 등반 도중 실종됐던 70대 한인이 일주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일이 있었다. 이 일은 등산 애호가 사이에서 일주일 내내 화제가 됐다. 그 중 '밑으로 밑으로 내려만 오면 될 텐데 어떻게 일주일이나 고립될 수가 있을까'라며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언뜻 맞는 말 같지만 이는 캘리포니아 산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완만한 한국 산과 달리 깎아지른 절벽에 가파른 계곡이 많은 이곳 산은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넘어지거나 구르기 십상이고 자칫 치명적인 부상도 입을 수가 있다.

폭포나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캐녀니어링(canyoneering)'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훈련 받지 않은 사람은 오히려 더 위험하다. 산 속 변화무상한 날씨도 복병이다. 거기다 부상이라도 당했다면 정말 예측 못 할 상황에 빠지고 마는 것이 산행의 어려움이다. 산은 누구든 받아들이지만 모두에게 다 너그럽지는 않다. 욕심 부리는 자, 서두르는 자, 자만하고 방심하는 자에게 산만큼 위험한 곳도 없다.

그래서 조난 사고 가 날 때마다 전문 산악인들은 당부, 또 당부한다. 혼자보다는 가능한 한 일행과 함께 갈 것,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무리하지 말 것, 단체산행일 경우 리더를 잘 따를 것 등이다. 만에 하나 길을 잃었다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거나 큰 길을 만나면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 훨씬 더 구조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덧붙인다. 비상용 라이터를 휴대하고 다니다 조난 시 불 안 나게 조심하면서 연기를 피워 올리라는 분도 있다.

이 모든 조언의 공통점은 결국 산 앞에선 자신을 낮추고 좀 더 겸손해지라는 것이다. 겸손은 어디디나 통하는 '마스터 열쇠'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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