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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참회문, 새 생활 개척하는 첫걸음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LA중앙일보] 발행 2019/07/16 종교 26면 기사입력 2019/07/15 18:55

참회라 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된 생활을 청산하고 새 생활을 개척하는 첫걸음이며, 악도를 놓고 선도에 들어오는 초문이다. 영원히 참회 개과하는 사람은 능히 상생상극의 업력을 벗어나서 죄복을 자유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종교를 막론하고 성현들께서는 참회의 길을 열어놓으셨다.

원불교 입장에서 원죄의 근거는 무엇인가? 흔히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는 죄업'이라는 표현을 쓴다. 때로는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 줄을 몰라서, 때로는 시비를 안다 하더라도 불같이 일어나는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철석같이 굳은 습관에 끌려서 죄업을 짓게 된다. 알 만한 사람들이 재, 색, 명리 때문에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그들이 시비를 몰라서가 아니다. 알지만, 욕심과 습관에 끌려 일을 그르치는 것이다.

수양력이나 지혜가 부족해서 죄업을 짓는 것이라면, 수양력과 지혜를 얻은 도인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을까? 더 이상 참회도 필요 없다는 말인가? 대종사께서는 견성 후에도 천만번뇌와 착심이 일시에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성불을 하였다 하더라도 정업은 면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죄업을 경하게 알지 말고 참회를 계속해야 한다고 하였다.

죄는 본래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고 업은 본래 무명이다. 자성의 혜광을 따라 마음을 멸하면 죄업은 반드시 없어진다. 이것이 죄성이 공한 자리를 깨쳐 안으로 모든 번뇌망상을 제거해 가는 '이참'이다. 죄업의 근본은 탐진치(貪瞋痴)이다. 이참과 함께 날로 모든 선을 행하는 '사참'의 병진을 통해 탐진치를 제거해 가야한다.

성철 스님은 '불교는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했다. 무명에서 삼독심이 발하고, 삼독심의 탐욕이 나만을 이롭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죄업을 짓는다는 것이다. 남을 위해서 살게 되면 거꾸로 삼독심과 무명을 소멸하게 된다는 말이다.

옛 경전에, 정업은 능히 면하지 못한다고 하였고 천업을 임의로 한다고도 했다. 이미 정해진 업을 완전히 면하기가 어려우나 점진적으로 면해가는 일이 없지 않다.

수도를 잘하면 그 위력으로 정업을 가볍게도 할 수도 있으며, 악연이나 악과를 도심으로 상대하면 정업일지라도 소멸시킬 수 있다. 또한 적적성성한 자성불을 깨쳐 마음의 자유를 얻게 되면 천업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

알고 짓건, 모르고 짓건 누구나 죄업을 짓게 마련이다. 참회문은 우리에게 죄의식을 심어주고 위축시켜 절대자에 두려움을 갖게 하거나 복종하게 하려고 열어놓은 길이 아니다. 고해의 바다에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우리 모두에게 새생활을 개척하고 선도에 드는 길을 제시해 주는, 성현들의 자비와 희망의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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