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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탐사는 내 인생 오점"···'달의 저주' 평생 시달린 우주인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7/19 13:02



아폴로 11호의 세 주인공들. 왼쪽부터 닐 암스트롱 선장,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 탐사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 [AP=연합뉴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지 20일로 50주년이다. 아폴로 11호 선장 닐 암스트롱(1930~2012)과 버즈 올드린(89)의 이름은 역사에 빛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행복했을까. 외신과 관련 서적을 종합해보면 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올드린은 “달 탐사를 끝내고 귀환하자 세상은 우리를 격찬했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런 상황에 무방비 상태였다”며 “우린 그저 공학자이자 과학자, 전투기 조종사였는데 갑자기 대스타가 됐고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 버거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닐 암스트롱은 지구로 귀환한 뒤 영웅이 됐지만,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렸다. 과묵하고 내성적이었지만 달 탐사 이후엔 “염세적 성격으로 변했다”는 말도 나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원치 않았던 그는 항공우주국(NASA) 내근을 택했지만 세상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그는 사인 공세에 특히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NASA의 한 후배가 그에게 사인을 요청하자 “난 사인 안 한다”고 뿌리쳤던 일화도 있다. 기분이 상한 그 후배는 “암스트롱은 왜 그리 적대감으로 똘똘 뭉쳤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아폴로 부즈 올드린






암스트롱도 할 말은 있다.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그의 사인이 경매에서 거액에 판매가 되면서 사기 행각마저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폴로 11호 달 착륙 25주년인 1994년엔 그는 아예 “앞으로 사인은 안 한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25주년이었던 94년 7월20일엔 그가 고문역을 맡았던 에너지 관련 회사의 회의에 참석하는 평범한 일정을 소화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한 인물은 텔레그래프에 “25주년 관련해 뭔가 (암스트롱이) 말을 꺼낼 거라고 모두 기대했는데, 한마디도 안 했다”고 전했다. 25주년은 그에게 상처만을 남겼다. 부인과 이혼을 한 것도 이때였다.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피할수록 세상은 그를 더욱 원했다. 2004년엔 급기야 그의 머리카락 한 움큼이 3000달러(약 352만원)에 거래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의 단골 이발사인 막스 사이즈모어는 유명인의 기념품 경매를 전문으로 하는 토드 뮬러라는 이에게 “머리카락 조금만 갖다 주면 후사하겠다”는 말을 듣고 암스트롱 몰래 세 차례 그의 머리카락을 판매했다. 사이즈모어는 텔레그래프에 “처음엔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면서도 “이발 후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재빨리 주워 담아서 몇 번 판매했다”고 말했다. 이를 알게 된 암스트롱은 버럭 화를 내고 사이즈모어의 이발소에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 달 탐사 임무 때 소지하고 있던 골드메달이 경매에 부쳐져 205만 달러(약 24억 원)에 낙찰됐다. 암스트롱은 생전 자신의 사인이며 머리카락 등이 경매에 부쳐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연합뉴스]






암스트롱은 한국과의 인연도 있다. 6ㆍ25에 참전해 전투기를 몰고 78차례 출격을 한 경력이 있다. 그의 전기인 『퍼스트맨』의 저자 제임스 R. 핸슨에 따르면 암스트롱의 주요 임무는 정찰기 호위 및 철로ㆍ다리 등에 폭탄을 투하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핸슨은 “어느 날 팬서 전투기를 타고 비행을 하던 암스트롱은 비무장 상태인 북한 군인들이 막사 밖에서 아침체조를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며 “기관총 사격으로 그들을 죽일 수도 있었으나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고 한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이들을 죽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기록했다.

암스트롱은 결국 고향인 오하이오로 돌아가 작은 농장에서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 2012년 사망했다.




아폴로 11호에 탑승했던 버즈 올드린이 지난 12일 우주비행사들이 사용하는 각종 장비를 진열한 무대에 올라 자신의 달 착륙 경험을 들려줬다.






그의 뒤를 따라 두 번째로 달 표면을 밟은 올드린은 좀 더 쾌활한 편이었다. 그는 곧 NASA의 홍보 담당 대변인이 됐고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는 모습도 연출했다. 하지만 결국 유명세에 못 이겨 알코올중독에 시달렸다. 그러나 올드린은 강인한 우주비행사답게 알코올중독을 이겨냈다. 이후 여러 행사 등에 초청되는 단골 연사로 인기를 모았다. 올해 3월 달 착륙 50주년을 미리 기념해 열린 역대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의 만찬 모임엔 화려한 은색 수트와 나비넥타이 차림으로 등장했다. 수트엔 각종 행성이 프린트되어 있었고, 양말은 성조기의 별과 줄무늬 패턴을 골랐다. 암스트롱과 달리 어느 정도까지는 대중적 인기를 즐긴 그다운 복장이었다.

아폴로 11호 이외에도 NASA의 아폴로 프로젝트의 주인공 중 상당수는 우주 탐사 이후 기구한 삶을 살았다. 이런 이들의 비극적 삶을 조명한 책까지 나와 있다. 영국 작가 앤드루 스미스가 쓴 『달의 먼지: 지구로 떨어진 인간을 찾아서』에 따르면 아폴로 15호의 조종사 제임스 어윈은 종교에 심취해 노아의 방주를 찾겠다며 6차례 탐험대를 인솔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와 함께 아폴로 15호에 탑승했던 찰스 듀크는 알코올중독에 빠졌고 이후 종교에 귀의했다. 듀크는 “달 탐사는 내 인생의 오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미스에 따르면 아폴로 프로젝트에 따라 달을 탐사했던 14명 중 10명은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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