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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아폴로 신드롬 일으킨 문워킹…“인류에겐 큰 도약이었다”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7/21 08:13

아폴로 11호 달 착륙 50주년
소련, 1957년 세계 첫 위성 쏘자
미국, 과학기술·교육 혁신해 반격
케네디 “쉽지 않고 어렵기에 도전”



1969년 7월 20일 달에 도착한 아폴로 11호의 착륙선 이글호와 버즈 올드린. 19분 전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 선장이 찍었다. [AP=연합뉴스]





지난 20일로 인류가 달에 착륙한 지 50주년을 맞는다. 1969년 7월 20일 21시 17분(이하 그리니치 표준시간, 한국이 이보다 9시간 빠름) 미국 우주항공국(NASA)의 닐 암스트롱(1930~2012년) 선장과 버즈 올드린(89)은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의 착륙선 이글 호를 타고 달 표면의 ‘고요의 바다’에 내렸다. 인류가 달에 처음으로 착륙한 순간이다.

이들은 앞서 7월 16일 13시 32분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새턴 5호 로켓이 쏘아 올린 아폴로 11호에 실려 달 궤도까지 갔다. 그 다음 이글 호를 조종해 달에 착륙했다. 달 도착 6시간 뒤인 7월 21일 02시 56분 암스트롱은 이글 호에서 나와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디뎠다. 그는 달에서 휴스턴 본부와 교신하며 “이 걸음은 한 인간에겐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겐 커다란 도약이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라는 말을 남겼다.




달 표면에 선 올드린 .





19분 뒤 이글호 조종사인 올드린이 뒤따라 내렸다. 두 사람은 중력이 지구의 약 6분의 1인 달 표면을 걸어 다니며 2시간 15분 동안 월석 채취 등 임무를 수행했다. 이 과정은 전 세계에 중계돼 ’아폴로 신드롬‘을 불렀다. 사람들은 우주와 과학기술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며 희망에 부풀었다. 그동안 사령선 모듈인 컬럼비아호에는 우주비행사 마이클 콜린스(89)가 남아 달 궤도를 선회했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달 표면에서 모두 21시간 30분을 지낸 뒤 이글호를 이륙시켜 사령선과 도킹했다. 세 사람은 7월 24일 태평양 해상에 내려 지구로 귀환했다. 이들의 임무 수행 시간은 8일 3시간 18분 35초였지만 그 울림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달에 인간을 보내는 아폴로 계획은 원래 냉전 경쟁국인 미국과 소련의 자존심 대결에서 비롯했다. 경쟁은 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 궤도에 쏘아 올리면서 시작됐다. 그해 11월 3일엔 소련이 스푸트니크 2호에 라이카 품종의 개를 실어 보내 생명체가 엄청난 압력을 견디고 지구 궤도에 올라 무중력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아폴로 11호의 우주인들. 왼쪽부터 암스트롱, 마이클 콜린스, 올드린. [AP=연합뉴스]





미국은 ‘스푸트니크 충격’에 빠졌다. ‘과학기술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 무너진 건 물론 소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인공위성처럼 우주 공간을 거쳐 미국까지 올 수 있다는 생각에 공포까지 느꼈다. 미국은 이에 대응해 같은 해 12월 6일 뱅가드 TV-3을 발사했지만, 중간에 폭발했다. 58년 1월 31일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주노 1호 로켓에 실어 발사하는 데 성공했지만, 스푸트니크에 이은 세계에서 두 번째 위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년, 재임 53~61년) 미국 대통령은 혁신으로 역전을 노렸다. 우선 58년 7월 29일 우주·항공 분야 장기계획을 위한 우주항공국(NASA)을 창설했다. 미국은 우주항공 분야는 물론 과학기술 전반에 걸쳐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늘렸으며 정책과 행정도 대대적으로 개혁했다. 대학은 물론 중고교의 교육 과정도 대대적으로 개혁해 수학·과학 교육을 강화했으며 전 세계에서 과학기술 인재를 초빙했다.

61년 4월 12일에는 소련의 유리 가가린(1934~68년)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무중력 상태의 우주권에 진입해 1시간 48분 동안 지구를 일주한 뒤 돌아왔다. 가가린이 “지구는 푸른빛이었다”라고 말하자 미국인들은 안색이 창백해질 수밖에 없었다.




존 F 케네디의 모습. [사진 JFK 대통령 도서관]]





미국은 과학기술 국력을 재정비한 뒤 도전장을 내밀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17~63년, 재임 61~63년)은 취임 첫해인 63년 5월 25일 의회 연설에서 “60년대 말까지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지구로 무사히 귀환시키는 것”을 국가적 목표로 내걸었다. 소련의 우주기술을 단박에 뛰어넘는 아폴로 계획은 이렇게 시작됐다.

케네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는 62년 9월 12일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라이스대에서 국가우주계획을 주제로 했던 연설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왜 달인가? 왜 이를 우리의 목표로 삼았나? 그런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도 말했을 겁니다. 왜 가장 높은 산에 오르려고 하는가? 왜 35년 전에 대서양 횡단비행을 했는가?…우리가 달에 가기로 한 것은 그것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목표는 우리의 열정과 능력을 최대한 조직하고 평가하게 해줄 것입니다.”

케네디는 53년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인 텐징 노르가이의 에베레스트 정복과 27년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비행을 예로 들며 인류가 도전정신으로 문명을 발전시켰음을 강조하며 아폴로 계획의 인류사적인 의미를 표현했다.

아폴로 계획은 비극으로 시작했다. 67년 1월 27일 지상 훈련 중이던 아폴로 1호에서 화재가 발생해 내부에 타고 있던 거스 그리섬 선장과 에드워드 화이트, 로저 채피 등 3명의 우주비행사가 목숨을 잃었다. 아폴로 계획의 희생자이자 인류 우주 정복의 순교자다.

NASA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폴로 4~6호는 무인비행으로, 7~10호는 유인 비행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는 기술을 발전시켜나갔다. 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성공적으로 달에 착륙한 것은 이러한 의지와 끈기, 그리고 집념의 결과였다.

미국은 아폴로 계획에 72년까지 모두 6차례 달에 인간을 보냈다. 미국 외에 달에 인간을 보낸 나라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없다.

인류를 달에 보내는 아폴로 계획 일지
1957년 10월 4일 소련, 세계 최초 인공위성 발사
11월 3일 소련, 생명체(개) 탑승 위성 발사
12월 6일 미국, 뱅가드 TV-3호 발사 실패
1958년 1월 31일 미국, 첫 인공위성 발사
7월 29일 미국 , 우주항공국(NASA) 창설
1961년 4월 12일 소련 가가린, 인류 최초 우주 비행
5월 5일 미국 셰퍼드, 미국인 첫 우주권 진입
1962년 2월 20일 미국 글렌, 미국인 첫 궤도 선회
5월 25일 미국 케네디 , 아폴로 계획 발표
1965년 3월 18일 소련 레오노프, 인류 첫 우주 유영
1966년 2월 3일 소련 무인우주 선 루나 9호, 달 착륙
1967년 1월 27일 미국 아폴로 1호, 화재로 3명 희생
1967년 11월~69년 5월 미국, 아폴로 4~10호 비행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 최초 달 착륙
7월 21일 암스트롱·올드린 달에 발 디뎌
1969년 11월~72년 12월 아폴로 12호, 14~17호 달 착륙
천문학적 비용 든 우주개발…의학·화학 발전에 큰 기여

민간우주업체 스페이스X사의 ‘팰컨 헤비’ 로켓이 발사 대기 중이다. [사진 스페이스X]

우주 개발에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과학기술 지식과 노하우를 총동원해 존재하지 않은 기술을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아폴로 계획만 해도 1961~73년(마지막 달 착륙 이듬해) 12년간 254억 달러의 예산을 들였다. 2018년 가격으로 환산하면 1530억 달러다. 아폴로 계획을 비롯한 우주개발 프로젝트는 과시와 체제 경쟁을 넘어 경제적인 효과도 톡톡히 거두면서 인류 발전에 기여했다.

우주개발 과정에서 사용한 기술이나, NASA가 미래를 대비해 개발한 기술이 대거 민간에 제공되면서 인류의 생활기술로 활용되고 있다. ’NASA 스핀오프(spinoff·파생) 기술‘로 불리는 우주 관련 기술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건강 의학 부문에서는 의료 기관에서 흔히 사용하는 귀 적외선 체온계가 대표적이다. NASA가 별의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을 의료용으로 응용했다. 인공 심장이나 심실세동기도 NASA에서 원천 기술을 개발했다. 레이저 시력 교정에 사용하는 라식 기술도 마찬가지다. 흠이 나지 않는 렌즈도 NASA에서 나왔다.

우주선에선 작은 흠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NASA는 안전 기술 개발에 많은 투자를 했다. 민간에 넘어간 관련 기술로는 항공기 결빙방지 기술, 불에 타지 않는 내화 소재, 화학물질 탐지기, 화재 탐지기 등이 생활 기술로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 소방을 위한 다양한 시스템도 NASA가 원천 기술을 제공했다. 신발 등의 충격 흡수재나 배게, 여성의류 등의 형상 기억 소재도 NASA에서 민간으로 이전됐다.

우주 식량을 개발하면서 나온 다양한 기술도 민간으로 이전됐다. 냉동 건조 식품 기술과 필터 정수기가 대표적이다. 태양열이나 태양광 발전도 우주선에 사용하다 민간으로 퍼졌다. 민간에서 개발한 디지털 이미지 센서, 데이터 저장 CD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은 우주선에 적용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미국의 글로벌 화학 기업인 듀폰에 따르면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에서 사용한 우주복은 극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고기능 첨단 소재를 사용했다. 나일론계 고분자인 노멕스와 캡톤 폴리이미드 필름 등이다. 첨단 소재 덕분에 달 표면에 착륙한 우주인들은 섭씨로 낮에는 123도, 야간엔 영하 233도를 오가는 달 표면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노멕스는 방열·방염 소재로 상용화돼 항공·군사·소방·산업·의류 용으로 지금도 활발하게 사용한다. 캡톤은 영하 269도~영상 400도의 온도에서도 안정적인 소재로 항공우주·X레이 부문과 전자제품 제조, 3D 프린팅 등에서 광범위하게 이용된다.

우주 기술은 민간에 확산하면서 인류 생활에 기여할 뿐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 첨단 과학기술 연구·개발을 자극하고 영감을 제공해왔다. 컴퓨터의 발전에 우주 관련 수요가 자극제 역할을 한 것은 잘 알려졌다. 미국이 소련과의 체제 경쟁으로 시작한 아폴로 계획은 오늘날 우리 주변의 첨단 생활기술로 남아있다.

현재는 스페이스X, 버진애틀랜틱 등 민간업체가 나서 발사대행·우주관광 등 우주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인도·일본 등 후발 주자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우주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국도 2020년 달 궤도선을 발사하고 2030년까지 달에 착륙선을 보내는 것을 목표로 뛰고 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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