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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봉화 250㎞ ‘원정 밭일’ 가던 노인·외국인 13명 사상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7/22 08:06

농촌 고령화 인력난이 부른 참극
16명 15인승 차로 새벽 1시 출발
길 헤매다 삼척서 승합차 전복
외국인 3명은 사고난 뒤 사라져
운전자, 10년 전 16명 사상 사고

5~6월 전라 양파, 7월 경북 쪽파
전국 돌며 일당 6만~



22일 강원도 삼척시에서 승합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해 13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16명의 탑승자 중 3명의 외국인은 사고 직후 종적을 감췄다. [연합뉴스]





70대 노인 5명과 외국인 근로자 9명 등 16명을 태운 그레이스 승합차는 22일 오전 1시 충남 서해안의 홍성을 떠났다. 그레이스 승합차가 향한 곳은 경북 봉화군에 있는 쪽파밭이었다. 자동차로 4시간 가량 걸리는 먼 거리다. 이들은 봉화에서 쪽파를 파종하고 일당을 받기로 했다. 일당은 6만~10만원선. 하지만 그레이스 승합차는 쪽파밭에 도착하기 전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산악지대 급경사 길에서 사고가 나 4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 2명은 외국인이다. 부상자 가운데 3명은 크게 다쳤고 6명은 경상이다.

이날 13명의 사상자를 낸 삼척 승합차 전복사고는 농촌 고령화와 인력난의 현주소를 드러낸 참사다. 삼척경찰서 등에 따르면 사고 당시 15인승 그레이스 승합차에는 운전자와 인부 등 총 16명이 타고 있었다. 이 중 내국인은 7명으로 모두 여성이다. 더욱이 전모(76·여)씨 등 5명은 일흔이 넘었다. 차량 운전자 강모(61·여)씨 등 2명도 60대다. 사고를 당한 내국인은 홍성군(6명)과 청양군(1명) 주민인 것으로 확인됐다. 홍성군에서 봉화군까지는 250㎞가량 된다.

삼척경찰서 관계자는 “사고가 7시 33분에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이들은 6시 30분가량 차를 타고 이동했다”며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다 보니 그렇게 먼 거리를 이동한 것 같다. 농촌에선 사람이 없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도 많이 쓴다”고 말했다. 그는 “홍성에서 봉화를 가는데 운전자가 길을 잘 몰라 삼척까지 가게 된 듯하다”고 말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숨진 강씨는 2009년에도 승합차를 몰다 자신을 포함해 모두 16명이 다치거나 숨지는 사고를 냈다. 2009년 1월 홍성군 홍성읍 옥암리 축협 앞 도로에서 강씨가 몰던 승합차가 앞서가던 굴착기를 들이받아 5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차에 타고 있던 16명 중 9명은 태국 등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였다. 이들은 대부분 30~40대다. 외국인 노동자 중에는 체류 기간이 끝나 수배 중인 불법체류자도 있었다. 사고 직후 불법체류자로 추정되는 외국인 노동자 3명은 현장을 빠져나가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농가는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해 어쩔 수 없이 노인은 물론 외국인 불법체류자까지 쓴다고 입을 모았다. 삼척에서 쌈배추 16만5000㎡를 재배하는 이동열(55)씨는 지난 14일부터 인부 19명을 고용해 배추 출하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중 10명은 80대 이상 노인이고, 8~9명은 외국인 근로자다. 이씨는 “요즘 농촌 일을 하려는 젊은이도 없고, 농촌이 고령화되다 보니 80대 일꾼도 어쩔 수 없이 쓰고있다”고 말했다.

인력사무소 관계자들 역시 농촌 인력난이 심화하면서 원정을 떠나는 불법 파견업까지 활개 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충남 홍성군의 한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5~6월 전라도와 충남 지역의 대규모 경작지에서 고구마 파종과 양파·마늘 수확 작업이 끝나면서 강원도로 일감이 몰리는 시기”라며 “농촌에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60대 내국인과 외국인 등 일꾼을 모집해 원정 근로를 떠나는 불법 중개업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봄철 충남 홍성·서산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강원도와 경기도, 경북까지 전국을 돌며 일하는 실정”이라며 “농촌 일 특성상 아침 일찍 작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과속하거나 과적을 해서 무리하게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고령화와 일손 부족으로 지역특산품 재배를 포기하는 농가도 속출하고 있다. 경북 고령군의 ‘우곡수박’이 대표적이다. 우곡수박의 경우 재배 면적이 4년 새 반 토막이 났다. 이 지역 수박 재배 면적은 2015년 419㏊에서 올해 201㏊ 약 53% 줄었다. 같은 기간 수박 재배 농가는 509 농가에서 올해 300 농가로 40% 감소했다. 주민 박해동(58) 씨는 “수박 농사는 하루 7명의 인부가 필요한데 일손 구하는 게 쉽지 않아 수박 재배농가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있다”며 “상당수 농가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농가 인구는 231만명이다. 10년 전인 2008년(318만명)과 비교할 때 27.4% 감소했다. 같은 기간 농촌 고령화는 더욱 심화했다. 2008년 농가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33.2%였는데, 10년 만에 44.6%로 11.4%p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농사를 짓는 농가경영주의 약 60%는 65세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사고와 관련 경찰은 삼척 가곡 방향의 내리막 우회전 구간을 운전자가 차량을 통제 못 하고 사고 지점 20m 정도 옹벽에 부닥친 후 긁고 내려가다 가드레일을 들이받고서 전복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가 난 곳은 경북 석포에서 삼척 가곡을 잇는 일명 ‘석개재’ 고개로, 평소 교통량은 많지 않은 곳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지점은 봉화 석포 방향과 반대 방향이었다”며 “운전자가 초행이어서 길을 잘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경찰 관계자는 “운전 부주의나 제동장치 이상 등도 원인이었을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삼척=박진호·최종권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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