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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포도나무 그늘의 추억

이집에 살며 나는 친정집처럼 포도나무를 오래 전에 심었다. 겨울이면 나무 가지들을 자르며 생각보다 일이 많아 씨가 있는 청포도나무는 없애버리고 와인을 만든다는 사탕 포도나무만 남겼다. 첫해는 귀여운 열매가 신기해 큰 대야로 따서 나누어 먹었는데, 그후 물과 영양부족으로 포도를 좀처럼 구경할 수 없었다. 비를 좀 맞으면 어쩌다 한 두 송이 달려 종이봉지를 싸주며 기대했지만, 밤이면 너구리인지 쥐새끼인지 봉지까지 뜯어가며 송두리째 먹어치우곤 했다.

그런데 어느 겨울인가, 집에 일하러 온 라티노 청년이 자기 집에 심고 싶다며 우리 포도나무 가지를 하나 잘라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주고 나도 잘라서 심었는데, 이듬해 봄에 새싹이 나오고 살아났다.

햇살이 뜨거운 여름엔 패티오 문을 열고 나가면 뒤뜰의 열기가 대단한데 포도그늘이 시원하여 여태 기르고 있다. 올해엔 비가 자주 내려서인지 좀 열렸는데, 병에 걸린 것도 있고 몇 송이는 괜찮다. 새들에게 도둑맞지 않으려니 설익은 포도이지만 따서 먹는다. 놀랍게도 신맛이 없다. 자잘하고 보랏빛 색깔도 완벽하지 않으니 지인들과 나누어 먹을 수도 없다.

못생긴 유기농 포도를 가족끼리 먹으며 어린 시절 내 추억으로 돌아간다. 한국전쟁 때 아버지는 직접 감독하고 구상하여 서석동에 지은 집을 지키기 위해 보성의 친척집으로 가족들만 피난을 보냈다. 그때 나에게 보리죽을 먹여 설사를 했다던 힘든 이야기며, 한참 후 어머니가 애들 데리고 돌아오니 마당의 청포도가 탐스럽게 열려 있더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직장을 잃었기에 집 포도를 따서 동네 가게에서 쌀과 바꾸어 먹었던 이야기를 난 지금도 기억하면 재미있다.

어디 그뿐인가, 당시 이웃들과도 나누어 먹었지만, 오빠와 동생이랑 친구랑 대롱대롱 매달려 따먹던 우리에게 간식거리인 포도나무를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하다.

아버지는 포도나무 곁에 항아리를 묻어 놓고 남자들은 소변을 보게 하여 그 삭힌 거름을 나무들에게 먹였다.

요즈음 아이들은 아프리카 같은 미개발 지역에 가면 재래식 화장실의 역겨운 냄새 때문에 며칠 째 볼일을 못 본다고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재래식 변소에 우린 익숙했기에 그런 것쯤은 전혀 불편하지 않다.

나의 이런 이야기를 듣던 딸은 인터넷으로 옛 노래를 찾아 크게 틀어 놓는다.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 어여쁜 아가씨여 손잡고 가잔다~.' 백년도 지났지만 얼굴도 모르는 손녀딸이 외할아버지가 즐겨 부르시던 '청포도 사랑' 노래를 따라 부른다.


최미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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