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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트럼펫 부는 사내

'삶은 늘 시련인 것(Life's full of bumps).' 출근길 아침, 105번 서쪽 방향에서 110번 북쪽으로 바꿔 타는 프리웨이 맞은편 고가다리 난간 옆에 스프레이로 휘갈겨 쓴 한 문장을 만난다. 근처 도로변 풀밭에 몇몇 노숙자 텐트가 보인다. 어떤 사람일까, 삶의 신산함을 짧은 한 문장으로 흩뿌려 놓은 이는. 나도 글쓴이의 마음이 되어 잠시 지나온 생의 굴곡을 떠올린다.

얼마 전 다운타운의 7가와 샌피드로 스트리트 부근, 허름한 공장이 밀집한 빌딩 숲을 지날 때였다. 어디에서 트럼펫 소리가 들렸다. 한 블록 위엔 노숙자들의 텐트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곳. 나는 소리를 쫓아 골목길로 들어섰다. 빌딩과 빌딩 사이 한구석에서 허름한 중년 흑인이 트럼펫을 허공에 올려 대고, 니니 로소의 '밤하늘의 트럼펫'을 불고 있었다. 나는 멀찍이 차를 세우고 그의 연주를 들었다. 프로 못지않은 실력이었다. 해거름의 옅은 햇살에 트럼펫이 반짝였다. 적막만 내려앉은 거리에서 세상 속에 섞이지 못한 그의 고단한 영혼을 달래듯 골목을 휘감고 도는 트럼펫 소리. 돌아오는 길 내내 그의 모습이 따라왔다.

내가 사는 동네에 이른 아침이면 누더기를 걸치거나 카트에 잡다한 누추를 싣고 힘겹게 밀고 가는 초췌한 노숙자가 자주 눈에 띈다. 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요즈음에는 한인 노숙자도 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마음이 불편했다. 화가 났다가, 부끄러웠다가, 연민이 일었다.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들의 자녀도 다 잘나가는 것만은 아니다. 인터넷 도박에 빠져들거나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마약류에 손대는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다. 모두 쉬쉬해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들의 부모도 '내 아이만큼은…' 했던 사람들이다.



아는 이 중에 고등학생 때부터 문제를 일으키는 자녀를 둔 이가 있었다. 아이는 다니던 학교에서 쫓겨났지만, 부모의 발품 덕에 간신히 고등학교는 마쳤다. 가톨릭교회에 다니는 아이의 부모는 미사가 끝났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두 손을 모으고 앉아 있곤 했다. 부모의 피 같은 눈물을 봤음일까, 아이가 마음을 잡고 군에 입대했다. 헬리콥터 정비병과에 배치된 그는 제대 후 그때 익힌 정비 기술로 연봉이 높은 회사에 입사하고 맞춤한 배필을 만나 성실한 삶을 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될성부르지 않던 아이가 그렇게 변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의 기도 덕분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때 아이가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면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높은 벽 속이거나 밖으로 내쳐지는 삶, 그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한순간 잘못 들어선 결과는 극명하다. 그게 어디 아이들만의 문제일까.

살다 보면 누구나 사방의 벽이 캄캄할 때를 만난다. 다리 난간에 낙서처럼 절창의 문장을 써 놓은 사람이나 트럼펫을 잘 다루던 사람도 한때가 있었을 것이고 또 한 때를 놓친 사람일 것이다.

풍찬노숙의 한인이 더는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성환 /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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