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아름다운 우리말] 오솔길과 파도

길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길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기도 합니다. 길은 우리가 가야하는 곳이기도 하면서, 망설이기도 하는 곳입니다. 길이라는 말이 한자로는 도(道)라는 점은 많은 생각거리를 줍니다. 길은 곧 이치이기도 하고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도교(道敎)는 아예 종교이기도 합니다. 길 앞에 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도 깊습니다.

살면서 다른 이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 가고픈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첫눈 내리는 날 첫 발자국을 남길 때 묘한 감동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런 생각이 길에서 이어져 바다로 향합니다. 모래 위를 걸으며 새로 남긴 발자국에 웃음을 띠었다가 금방 사라진 흔적을 보며 씁쓸함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바다를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헛웃음을 너털대기도 하죠. 그때마다 제 길을 위로해 준 것은 파도였습니다. 내 아픈 발자국을 씻어가고, 동시에 내 속의 외로움이라든가 서러움이라든가 하는 찌꺼기도 멀리까지 담아갔습니다.

군자(君子)는 대로행(大路行)이라고 했던가요? 떳떳이 나를 내 놓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농담처럼 지자(智者)는 소로행(小路行)이라는 말도 합니다. 지혜로운 이는 꼭 나를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생각을 하는 듯합니다. 저는 큰 길보다 작은 길이 좋습니다. 길가에 나무가 심어져 있으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아니, 심어져 있는 게 아니라 숲길 사이로 난 길이면 더 좋겠네요. 누구의 의지가 아니라 태어난 그대로가 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흙길 위를 벗은 발로, 손에는 신발을 들고 걷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나무는 소나무나 자작나무였으면 좋겠습니다. 이 삶을 사랑하며, 진리를 바라보며 발을 내딛고 싶습니다. 그러기엔 작은 솔 길이나 자작나무 길이 좋을 듯합니다.

다른 나무면 어떻겠냐마는 저는 그냥 어릴 때부터 소나무나 자작나무가 좋았습니다. 소나무도 꼿꼿이 서있는 모습이 아니라 이리저리 가지를 흘러내린 모습이 좋습니다. 길도 소나무를 따라 이리저리 휘어갑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겠죠. 우리의 삶도 말입니다. 갈라진 소나무 껍질을 보면서 세상의 굴곡도 느낍니다. 많이 아팠을 겁니다. 그래도 버티며 세월을 지내왔습니다. 자작나무 길은 왠지 경건함마저 줍니다. 자작나무는 어릴 때에는 본 적이 없고 책 속에서 신화로 읽곤 했습니다. 예전부터 자작나무는 사람과 하늘을 이어주는 나무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은 제 마음을 보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숯덩이처럼 검게 타들어 간다고 하지만 저는 저 자작나무처럼 마치 재가 되듯이 하얗게 타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속을 다 태우고 하얀 재가 되어 서있는 듯합니다. 자작나무 길에서 저는 다 타버린 저를 만납니다. 남지 않았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텅 빈 힘을 느낍니다.



'pado'는 에스페란토어로 오솔길이라는 뜻입니다. 우연의 일치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파도라는 단어와 오솔길이라는 단어가 만난 것은. 오솔길은 원래 '오솔하다'라는 말과 길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무서울 만큼 고요하고 쓸쓸한 모습을 오솔하다고 합니다. 솔과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말이죠. 그런데 저는 자꾸 오솔길에 소나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나무가 아니라면 자작나무가 서 있는 듯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