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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미주의 여성 독립 유공자들

8월 5일은 대한여자애국단이 100년 전 창단된 날이다. 지난 주말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과 미주3.1여성동지회 주관으로 대한여자애국단 창단 100주년 기념식과 학술발표회가 열렸다.

UC리버사이드 장태한 교수, 한인 역사박물관 민병용 관장, 프레즈노의 차만재 박사가 참여해 주제발표와 토론을 했다. 이번에 4명의 강의를 나름대로 요약한 것을 한인들과 공유하고 싶다. 미국에 사는 한인으로서 먼저 온 선조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알고 우리 후손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후세들의 정체성 확립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독립운동사의 주역은 정치성이 강하고 권력지향적인 남성이다. 그러나 여성의 활동이 미진했던 것은 아니다. 묵묵히 뒤에서 봉사하고 활동해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1918년 대한인국민회는 여성도 정식회원으로 입회시키는 역사적인 결단을 내렸다. 미국보다도 앞선 선구적인 결정이었다.

190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최초의 미주한인 여성단체인 한국부인회가 탄생했다. 이후 하와이, 새크라멘토, LA, 다뉴바 등지에서 여성단체가 설립돼 독립자금을 지원하고, 자녀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장려하며 소속 교회를 지원했다.



3.1 운동 이후 활동을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펼치기 위해 4개 단체가 통합해 1919년 8월 5일에 대한여자애국단을 결성했다. 최초 본부는 다뉴바에 있었고 그후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1933년에 LA로 본부를 이전했다.

대한여자애국단의 설립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한인국민회와 동심동력한다, 둘째 가정의 일용사물을 절약해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내고 국내의 동포를 구제한다, 셋째 가정에서 일화(일본제품)를 배척한다, 넷째 부녀동포에게 독립사상을 전파한다 등이다. 실제 이들은 대한인국민회와 연계, 도산 안창호를 통해 거액을 후원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역사가들은 미주동포들이 보낸 금액이 독립운동 자금 전체의 60%라고 말한다. 매년 3만 달러 이상을 초과 모금했다. 하와이에 초기 이민온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69센트였다고 한다. 보통 20일조를 냈고 60%까지 낸 사람이 허다했다고 한다. 막일해서 번 돈의 상당부분을 조국독립을 위해 아낌없이 낸 것이어서 감동이 더하다.

훗날 백범 김구는 소원 중의 하나가 미주 동포들을 만나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 일환으로 태극기의 옆면에 감사의 글을 써서 도산의 아내 이혜련 여사(10대 단장)에게 보내기도 했다. 미국 등지에 11개 지부가 있었다. 멕시코와 쿠바에도 지부가 설립됐다. 회원이 많을 때는 150명에 이르렀다.

중국에는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소각되고 없어진 자료가 많아 안타까운데 미주에는 자료가 잘 보존돼 있다고 한다. 미주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유공자가 더 많이 발굴될 수 있도록 한인들의 관심과 관련 기관의 노력이 절실하다.


황근 / 육군학사장교 남가주동문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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