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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맑고 아름다운 큰 심성

한 눈에 혹하고 반해버렸다. 놀라운 흥분에 사로잡혔지만 눈 앞에 펼쳐진 위용은 마음을 오히려 차분히 가라앉히고 지그시 눌러준다. 그래도 터질듯 감당 못할 기쁨이 가슴에 차올라 입을 벌리고 충격을 감당하느라 숨을 고르고 침을 삼킨다.

이런 장관은 처음이다! 이런 고운 색도 처음이다! 이렇게 큰 보석은 처음 봤다! 거대한 블루 사파이어의 호반은 흰눈을 이고 있는 설산의 침봉으로 운두를 둘렀다. 거울처럼 눈산을 비치는 호수의 그림은 정지한 고체 위의 사진 같이 명징하다.

시야에 가득찬 생동감 넘치는 푸른색과 흰색의 조화를 바라보는 나는 홀연히 넋을 빼앗기고 신비감에 푹 젖어 현실감을 잊어버렸다.

크레이터 레이크(Crater Lake) 명성은 대강 알고 갔지만 실제로 보니 경이로움은 정말 매혹적인 장관이었다. 이 호수는 화산폭발 후 분화구에 물이 고여 만들어진 칼데라 호수다. 마운트 스콧의 높이가 8926피트니까 백두산처럼 높은 산이다. 넓이가 백두산 천지의 5.4배에 달한다니 대단하다. 또한 최고 수심이 594m에 달하는 북미대륙에서는 제일 깊은 호수다.



일반 호수의 경우 물이 맑아도 170피트 이상의 깊이엔 태양빛이 들어가지 못해 이끼가 살지 못하는데 여기는 700피트 깊이에도 이끼가 서식해 학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한다.

이 호수에는 다른 곳에서 물이 들어오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는다. 오직 설산이 흘린 눈물만이 고인다. 적설량과 증발량이 비슷해 일정한 수량은 유지되고 있다.

이 호수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짙푸른 색깔에 있다.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투명한 물이라 태양광선이 내려 쪼일 때 파장이 긴 붉은색이나 오렌지 색상은 먼저 흡수되고, 다음으로 노란색이 흡수되는데 파장이 짧은 푸른색은 흡수되지 않고 다시 수면 밖으로 반사되기 때문에 호수 전체가 남청의 짙은 쪽빛이 되어 사람들의 넋을 일시에 앗아버린다.

가슴 속 불기둥을 남김 없이 토해내고, 고산 침봉의 눈부신 설산으로 운두를 둘러 낮은 세상의 먼지와 바람을 막았다. 그리곤 티없이 맑고 맑은 심성으로 침잠. 빛을 끝모를 깊이로 받아들일 때, 고운 하늘빛 빨려 들어가 고이고 고여 짙어진 남청색. 준령의 높이만큼, 호수의 깊이만큼, 흔들림 없는 고요로 다져진 거대한 블루 사파이어. 그 넓은 가슴에 가득 담긴 결코 마르지 않는 풍요함, 얼어붙지도 않는 따스함.

세상사에 마음이 어지러울 때, 수시로 떠올릴 보석같은 친구. 위기에 찾아볼 큰 스승. 불변의 확고한 신앙. 참으로 닮고 싶은 맑고 아름다운 큰 심성! 작은 내 마음에 가득 채우니 돌아오는 발걸음이 기쁨의 풍선에 매달린 듯 둥둥 뜨게 가벼웠다.


민유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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