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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몬태나의 찬란한 7월

몬태나는 대체로 춥다. 5월에도 눈이 오고, 9월에 벌써 첫눈이 내린다. 겨울이 하염없이 길다고 해야 할까. 일년의 대부분을 눈 속에 묻혀 산다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태나에서 지내는 게 부담 없는 것은 강렬한 태양이 한 몫 하는 것 같다. 여름이라고 해도 100도 까지 올라가는 일 없고, 염천에도 그늘에 가면 서늘해진다. 대륙성 기후의 특징이다. 영하 20도 가까이 되는 추운 날에도 햇볕이 내리쪼이면 덥다. 그래서 하이킹 족들은 겨울에도 반바지에 반소매 티셔츠만 입고 산을 오른다.

막내가 사는 보즈맨은 인구 5만의 작은 타운이다. 몬태나 주립대가 자리 잡은 도시인만큼 학생 수가 1만5000명이나 된다. 그러니 도시 분위기는 자연히 젊음의 숨결이 요동친다. 성당의 주일미사에 가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뉴저지 내가 다니는 성당에 가면 머리가 은발인 노인들이 교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반해 보즈맨 성당엔 젊은 전문직 부부가 주류다. 당연히 부모와 함께 온 어린이들도 적잖다.

미국서 가장 살기 좋은 작은 타운 10위 안에 드는 만큼 보즈맨은 도시 분위기 전체가 시골답지 않게 생동감이 넘치고 정답다. 그리고 다운타운에서 5마일만 나가도 거대한 산들과 드넓은 평원이 양쪽으로 쫘-악 펼쳐진다. 그 대자연의 위용과 아름다움을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우리는 흔히 자연의 신비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자연의 무궁한 생명감과 웅대한 규모 앞에선 인간의 존재를 티끌 같다고 말하는 것조차 외경스럽다.

8월이면 이미 평원들은 누렇게 황금물결로 뒤덮인다. 그 평원엔 가축들의 월동준비를 위한 원통의 헤이(hay) 단들이 누워 있어서 마치 밀레의 추수하는 농부인양 착각을 일으켜준다. 거대한 평원이 아니라 예술 작품 같은, 그래서 내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그것이 현실인 듯 느껴지는, 참으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평원을 달리노라면 저 멀리는 머리에 새하얀 눈을 이고 있는 설산들이 겹겹의 산들 뒤에 장엄하게 둘러서 있으며, 지평선 너머로는 광대한 하늘이 360도로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몬태나를 '빅 스카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긴 겨울이 계속되는 몬태나에도 꽃피는 따뜻한 나라 같은 찬란한 계절이 있다. 바로 7월이다. 7월엔 산에 들에 야생화가 만발하고, 그 꽃향기 축제에 파묻힌다. 정원 한 켠에 만들어진 밭에선 온갖 허브들과 마늘, 양파, 브로콜리는 물론 갖가지 토마토며 상추, 스노우피, 오이, 호박이 무럭무럭 올라와 밥상을 푸짐하게 해준다. 온 들판은 초록 물결로 물들고, 높고 푸른 창공에선 새들이 즐겁게 노래 부른다.

뉴요커로 살다가 해마다 여름이면 7월 한 달을 몬태나에서 보낸 지도 꽤 되었다. 벳시 남편 마이클은 내가 보즈맨에 오는 게 10년이 넘으니 나는 객지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몬태나 사람이라고 은근히 추켜준다. 아닌 게 아니라 보즈맨에 오면 나는 매일 막내 뒷마당 밭에 물 주고, 잡초 뽑고, 그 밭에서 방울토마토도 따 먹고, 호박도 따고 오이도 따다가 밥해 먹으니 보즈맨 사람 다 됐다 하겠다. 작년에 심은 체리 나무는 올해 체리가 딱 한 개 열렸다. 뉴욕 촌뜨기가 몬태나 촌뜨기 되는 건 순간이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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