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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영화와 역사왜곡 논쟁

영화는 허구다. 허구라는 말은 아주 오랫동안 두 가지 상반된 의미로 유통되었다. 하나는 꾸며낸 이야기, 거짓을 뜻한다. 다른 하나는 상상력에 의한 순수 창작물을 가리킨다. 창조를 뜻하는 영어 create는 원래 신에게만 허용된 단어였다. 셰익스피어 시대만 하더라도 '창조물'은 환상이나 환영을 가리키는 비아냥이었다. 그랬던 창조가 예술가의 능력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낭만주의 이후였다. 상상력은 인간의 종적 차별성이 되었고 허구는 창조적 능력으로 추앙받았다. 고차원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재현하는 예술로 허구가 존중받기 시작한 것이다.

허구와 현실 사이에 놓인 변덕스러운 가치판단은 아주 오래된 논쟁거리다. 플라톤 같은 철학자는 허구를 실제보다 열등한 복사품으로 취급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예술가의 필독서 1번이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허구적 예술이 보편적이며 필연적인 것을 다루기에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며 중대하다고 말했다. 역사가 일회적이라면 허구는 있을 법한 일의 재현이다. 인간사의 보편적 진실을 탐구한 결과가 허구라고 본 것이다.

조철현 감독의 영화 '나랏말싸미'를 둘러싼 역사 왜곡 논쟁은 예술계의 오래된 스캔들인 허구와 현실의 위계성 논쟁과 무관하지 않다. 영화에 반대하는 관객들은 '나랏말싸미'가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위배하고 다른 가능성을 진짜처럼 꾸몄다고 거부감을 드러냈다.

한편, 대개의 영화 관계자들은 그것은 그저 '허구'일 뿐이라며 다른 역사 소재 영화의 접근법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상영 전부터 상영금지가처분 소송과 주연배우의 안타까운 별세로 원치 않았던 주목을 끌었던 '나랏말싸미'는 결국 상영 2주차 만에 거의 대부분의 극장에서 내려졌다. 누적 관객은 100만이 채 되지 않았으니 송강호·박해일 투 톱 주연의 화려함 치고는 그 흥행 성적이 누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감독의 상상이 과연 주목해야 할 만한지 아니면 무시해도 좋을지 등급을 매기는 커뮤니케이션이 바로 비평이다. 고전적 의미에서 비평은 대중에게 유통될 문화 상품에 대한 선제적 판단이자 가늠자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랏말싸미' 역사 왜곡 논쟁에 있어서 비평의 자리는 없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가치에 대한 평가를 건너 작품 밖으로 논쟁이 확장되어 버린 것이다. '나랏말싸미'가 불편감을 주었다면 그 영화적 상상력이 관객을 충분히 설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불충분한 설득력이야말로 먼저 비평의 영역에서 다뤄졌어야 할 문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역사 소재 영화를 대하는 현재 영화 소비자들의 감정 구조다. 역사는 사실 협소한 기록일 뿐이다. 허구적 상상력 없이 역사 영화는 만들어질 수 없다. 광대가 왕 노릇을 하고('광해-왕이 된 남자'), 왕이 남색가('왕의 남자')였다거나 왕위 계승 과정에 관상가가 개입했다('관상')는 발칙한 상상은 모두 포용됐다. 하지만 한글 창제에 스님 신미가 관여했다는 사실은 동시대 역사 영화 관객의 감정 구조를 건드리고 말았다. 영화가 대중 예술이라면 그것에 대한 반응과 흥행은 동시대 감정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조철현 감독의 잘못이 있다면 역사를 두고 상상을 했다는 자체가 아니라 동시대 관객의 감정구조를 읽어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관객의 감정구조란 어떤 점에서 한 시대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강유정 / 영화평론가·강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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