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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고서점(古書店)의 위로

헌책방이라고 하면 두 가지 느낌이 있습니다. 하나는 오래된 책이고 하나는 중고(中古)입니다. 비슷한 느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가격으로 보면 차이가 많이 납니다. 보통 오래된 책은 희귀(稀貴)하여 귀하고 비쌉니다. 중고는 누군가가 사용한 책이어서 싸게 구입하게 됩니다. 이제는 헌책방이 점점 오래된 책을 파는 고서점의 역할은 옅어지고, 중고 서적을 싸게 파는 곳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서점도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말입니다. 이제 고서점은 헌책방의 느낌과도 전혀 달라졌습니다. 고서점은 골동품 가게 같은 느낌까지 주고 있습니다. 고서점에 가면 보물찾기를 해야 할 느낌마저 듭니다.

저는 외국에 나가면 고서점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종은 고서점을 둘러보다가 다른 곳은 보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단체 여행일 때 고서점이 보이면 큰일입니다. 모임 시간에 늦어서 욕먹기 십상입니다. 제가 외국에서 주로 찾는 고서는 한국과 관련된 책입니다.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서 쓴 옛 책이거나 한국인이 쓴 책인데 외국에 남아있는 경우입니다. 어쩌면 두 가지 모두 외국인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은 책일 겁니다. 저도 늘 찾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이런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무엇과도 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일반적인 책이 아닌 경우는 한국의 모습이 담긴 지도나 우리나라의 옛 국기(國旗)가 담긴 국기 책을 찾습니다. 지도는 그대로 문화사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나라 이름이나 지명, 국기를 보면서 시간 여행을 합니다. 유럽에 특강을 갔을 때 1920년에 유럽에서 나온 국기 책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1920년에는 이미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여서 한국 국기는 당연히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당시 국가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탓인지 대한제국의 국기가 다른 국기와 함께 나와 있었습니다. 대한제국 초기의 국기여서 묘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우연한 일이었겠지만 나라는 망하였는데 국기는 살아있었던 겁니다. 우리나라 국기 옆에 용(龍)의 모양이 담긴 청나라 국기도 보였습니다. 청나라 국기 그리기가 쉽지 않았겠네요.

일본에서도 저는 고서점을 자주 찾습니다. 홋카이도 대학 앞에는 유명한 고서점이 두 곳 있습니다. 난요도(南陽堂)라는 서점과 코난도(弘南當)라는 서점입니다. 원래 난요도가 아버지가 운영하던 서점인데 이제 아들들이 난요도와 코난도로 나뉘어서 운영한다고 합니다. 난요도 서점을 운영하던 큰아들도 이미 10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서점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코난도 주인과 나누었습니다. 옛 지도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까 반색을 하면서 귀한 옛 지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코난도 주인은 고지도 수집가로서 따로 전시를 할 정도로 대단한 전문가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태평양 전쟁 전에 나온 일본 중등학교 사회과부도를 구입하였습니다. 당연히 한국과 대만은 일본 땅으로 나와 있습니다. 한국 위에는 만주국이 있네요. 아직 동남아시아에는 일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상태입니다.



난요도에서는 1909년에 일본에서 나온 세계지도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1909년은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 바로 전 해입니다. 1905년에 외교권은 빼앗겼지만 아직 국가는 남아있을 때입니다. 곧 사라질 국가의 운명이 지도에서 안타깝게 흔들려 보입니다. 국기가 세계 지도를 둘러싸고 있는데 역시 대한제국의 옛 국기가 보입니다. 유럽에서 산 국기 책보다는 후에 만들어진 대한제국 국기의 모양입니다. 나라 이름은 한 글자 '한(韓)'이었네요. 국가 이름이 참 간단하네요. 우리는 대한제국이라고 불렀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그냥 '한'이었던 겁니다. 1년 후면 없어질 나라의 국기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사진의 느낌이 듭니다. 동해는 일본해로 되어있고, 독도는 죽도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 작은 섬까지 표시해 놓은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국과 일본의 심리적 거리를 느끼게 합니다.

고서점에서 역사를 만나고, 문화를 만나고, 세상을 만납니다.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꿉니다. 고서점은 옛것에서 배우고 느끼는 기쁨을 맛보게 합니다. 고서점에서 한층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좋은 고서점이 계속 우리 주변에서 숨쉬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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