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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유진 오닐의 '타오 하우스'

[LA중앙일보] 발행 2008/12/09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08/12/08 20:11

정유석/정신과 전문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다음 해인 1937년 유진 오닐 부부는 한동안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호텔에 머물렀다. 그의 명성을 뒤쫓는 언론과 복잡한 도시 생활을 피하고 약해진 폐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조용한 사생활을 영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샌프란시스코나 오클랜드에서 동쪽으로 한참 떨어진 외진 시골에 불과했던 지금의 댄빌(Danville)에 153 에이커에 달하는 넓은 땅을 구입했다. 4만달러를 지급했는데 당시 노벨상으로 받은 금액이 4만달러였으니까 전액을 이 땅에 부어넣은 셈이다.

여기에 '타오 하우스(Tao House 道家)'를 짓고 칩거하면서 편안하게 글을 썼다. 세번째 부인이었던 칼로타 몬트레이는 도교를 믿어서 집의 방향이라든가 집안의 채색 장식들을 도교의 사상에 따라 황토색을 주조로 울긋불긋 꾸몄다.

그러나 자신의 서재만은 어려서부터 꿈꾸었던 바다로 향한 소원 때문이었는지 엷은 청색으로 치장했고 모형도 몇 개의 선박으로 장식했다. 일생동안 바다를 향한 작가의 집념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한 때 이렇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일생 집에 뿌리를 내릴 기회가 없었다. 호텔을 전전하며 자랐다. 그런 때문인지 남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범선을 타고 바다에 나가 항해를 시작하면 나는 내 생활의 뿌리가 거기 있음을 느낀다."

이 때가 그의 일생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다. 그는 '타오 하우스'에 대해 "이 집은 떠돌아 다니던 내 인생의 마지막 집이며 정착해야 할 마지막 항구"라고 표현했다. 그가 '타오 하우스'를 떠난 것은 2차 대전 때문이었다. 전쟁 초에 조리사가 징집되어 식생활이 조악해진 데다가 전쟁 말기에 들어 전속 운전사마저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신체적으로 허약했던 작가는 매주 샌프란시스코 시에 가서 정기 진찰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당시 '타오 하우스'는 너무 외진 곳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교통 사정이 아주 열악했다. 그래서 오닐 부부는 이 집을 팔고 동부로 이사했다. 그 후 오닐부부는 이 '마지막 항구'를 들를 기회가 없었다. 그 곳에는 부부가 기르던 개의 기념비만 남아있을 뿐이다.

'타오 하우스'를 포함해서 원래 오닐 부부가 구입했던 대지는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넘어갔다. 그들은 이곳을 주택단지로 개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지역에 물을 끌어 올 방도가 없어서 개발계획은 백지화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전화위복이 됐다.

이미 유진 오닐이 사망한 후였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이 지역을 살리자는 운동이 주로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그의 작품에 출연했던 영화 연극 그리고 문학계 인사들 사이에서 제기되었다. 그들은 캘리포니아주가 이 땅을 사서 사적지로 관리하도록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이 제안을 거부했다. 그 이유로 유진 오닐이 우선 캘리포니아 출신이 아니며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쓴 적이 없고 이 곳에서 사망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의 세금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도 사적지 보존 운동은 좌절되지 않았다. 연예계 인사들은 이제는 연방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결국 연방정부는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153 에이커 중 '타오 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13 에이커를 구입 연방 사적지로 지정했다. 나머지 140에이커는 현재 '이스트 베이 지역 보존 센터'의 관할로 넘어와 거대한 방목지로 이용되고 있다.

작가가 이 집에서 완성시킨 작품 중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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