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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마라톤, 죽을 힘 다해 달리다 바톤 넘겨줄것"

목양장로교회 담임 37년 송병기 목사

"하나님과 동행한 인생길, 모든 것이 은혜"
"시련과 고난 거쳐 정금 같은 신앙으로 거듭나"
18일 은퇴식 겸해 원로·공로 목사 추대식


척박한 이민사회에서 한인 이민교회를 개척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뉴욕에서만 37년간 목회 외길 인생을 걸어온 송병기(70·사진) 목사.

한국 서교동교회 전도사로 난지도에서 복음을 전파하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올해로 목회 인생 45년째인 그는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여정에 하나님의 섬세한 돌보심이 있었다며"며 "나의 목회 생활 전부는 하나님과 동행한 길"이었다고 말했다.

오는 18일 주일 오후 5시 은퇴식을 갖는 송 목사를 그가 시무하고 있는 퀸즈 화잇스톤 목양장로교회에서 12일 만났다. 다음은 송목사와의 일문일답.



-한 교회만 37년을 섬겼다. 목회자들의 교회 이동이 잦은 요즘, 비결이 있다면.

"주의 종이 가는 길에 비결은 없다. 그저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 말씀대로, 주는 내 발의 등이요. 나의 갈길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한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란 말씀만 필사적으로 붙들고 걸어왔다. 인생의 어려운 고비가 많았지만 그 때마다 주님이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셨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고난'이라는 것인데, 이 관문을 어떻게 거쳤나.

"그렇다. 예수를 믿게 되면 반드시 좌절.실망.역경의 시간을 지나야 한다. 예수를 믿으면 잘살고 다 잘된다는 것은 지나친 구복 신앙적인 생각이다. 예수는 십자가의 고통을 거쳐 부활했고, 그 피의 대가로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셨다. 마찬가지로 나도 인간으로 도저히 겪어내기 힘든 과정을 거쳤다."

-가장 잊지 못할 고난 한가지만 들라면.

"군대에 있을 때 회복이 불가한 간질환을 겪었다. 당시 병원에 3개월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치료를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치유해 주셨다. 5대째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고교시절부터 막연히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구체화 되지는 않았었는데, 당시 하나님께 고침을 받고 결심을 확고히 했다. 그 후 결혼해서 아내가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8개월만에 조산을 한 후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그 때는 형편이 너무 어려워 제대로 밥도 못먹던 시절이었다. 영양실조로 인한 임신중독증이었다. 방황하며 하나님을 떠나려고 마음 먹었지만 고난 속에서 다시 나에게 찾아온 주님을 통해 일어섰다. 나의 갈길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는 것을 그때 기도를 통해 깨달았고, 지금은 욥기 23장 10절의 나의 갈길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한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란 말씀이 나의 목회 인생길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민교회 개척에 가장 어려웠던 점은.

"한인들에게 뿌리의식과 정체성을 심어주는 일이다. 30~40여 년전 한국이 아직 선진국 대열에 끼지 못했을 때 미국에서는 대한민국의 존재에 대해 잘 몰랐다. 따라서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1.5·2세들에게 조국의 얼과 정신을 성경말씀과 함께 주입시키려고 노력을 했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 한국을 왠만한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만 그 땐 그렇지 않았다. 앞으로도 교회를 통해 2세들에게 한국인의 얼과 정체성을 심어주려고 한다. 목양장로교회는 3·1절, 광복절, 6·25 참전 기념일이 오면 전 교인이 모두 애국가를 4절까지 합창한다."

-성공적인 목회 뒤에는 사모의 헌신적인 섬김과 내조가 있다.

"올해 결혼 생활 44년 째다. 임신 후 영양실조로 임신중독이 돼 쌍둥이를 잃고,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불평 한마디 없이 부족한 나를 섬겨주고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치 못한 생활에서도 "사업가와 결혼한 것이 아니라 목회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괜찮다"라는 말에 많은 위로가 돼 지금까지 행복한 목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가장 감사한 것은 하나님과 부모님, 그리고 아내다. 앞으로도 남은 여생, 끝까지 주님 섬기는 일에 두 손 잡고 싶다."

-고희가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 은퇴 후 계획은.

"교회에서 원로 목사로 인정해줘, 이제 남은 시간은 선교에 헌신할 계획이다. 목회는 마라톤이다. 지칠때까지 뛰다가 0.01%도 더 이상 뛸 힘이 없을 때 바톤을 다음번 주자에게 물려주는 것이 바로 목회다. 죽을 때까지 선교하다 눈 감기 직전이 되면 바톤을 나와 같은 또 다른 이에게 넘겨주고 싶다. 그 다음은 천국이므로."

송목사는 사모 안춘희씨와의 사이에 아들 민석(43), 형석(41)씨가 있다. 중동고교, 연세대 신학대학을 거쳐, 장로회신학대학원(M.Div.) 메코믹(D.Min)·뉴욕신학대학원(D.Min)을 졸업했다. 교단활동으로는 해외한인장로회 뉴욕노회 노회장, 동북노회장, 총회장, 해외한인 장로회 뉴욕 신학대학장, 대뉴욕지구한인교회협의회장, 대뉴욕지구목사회장 등을 역임했다.


임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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