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67.0°

2019.10.15(Tue)

국보, 개인이 꽁꽁 숨겨둘 수 있나?

[LA중앙일보] 발행 2019/08/19 미주판 10면 기사입력 2019/08/17 23:34

김석하의 스토리 시사용어(6)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간송본(왼쪽)과 훈민정음 상주본. 위쪽과 아래쪽 여백의 차이를 알수 있다. 간송본은 여백이 훨씬 좁다. [연합]

훈민정음 간송본(왼쪽)과 훈민정음 상주본. 위쪽과 아래쪽 여백의 차이를 알수 있다. 간송본은 여백이 훨씬 좁다. [연합]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 손에 들려진 책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본사전송·간송미술문화재단]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 손에 들려진 책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본사전송·간송미술문화재단]

간송미술관에 보관중인 훈민정음 해례본 안동본. [본사전송·간송미술문화재단]

간송미술관에 보관중인 훈민정음 해례본 안동본. [본사전송·간송미술문화재단]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세종대왕 동상의 왼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있다.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例義)’와 ‘해례(解例)’로 나누어져 있다.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는데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글이다. 해례는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다섯 ‘해설’과 하나의 ‘예시’가 실려 있어서 ‘해례’라고 부른다. 한글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문자 가운데 만든 목적과 유래, 사용법, 창제 원리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일한 문자다. 이 모든 내용이 훈민정음 해례본에 담겨 있다. 우리가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과학적인 문자라고 자신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해례본 때문이다. 해례본은 국보 제70호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고교생 국가반환 촉구 서명운동
“국민 모두 공유해야 진정한 가치”

“가장 위대하고 과학적인 문자”
자신할 수 있는 건 해례본 때문


국보급 문화재를 개인이 꽁꽁 숨겨두고 있는 게 옳은가.

경북 상주시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을 국가에 반환할 것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섰다. 국보급 문화재인 상주본을 개인이 숨겨두고 있을 게 아니라 국민과 공유해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상주고 2학년 학생들은 지난 13일부터 전교생을 상대로 서명을 받고 있다. 서명을 받아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씨에게 전달하겠다는 계획이다.

학생들은 최근 대법원에서 '상주본 소유권은 국가에 있고 담당 부처인 문화재청이 배씨에게 상주본을 강제 회수할 수 있다'는 내용의 판결을 내리자 서명운동을 결심했다.



상주본 존재 미스터리

2008년 7월에 경북 상주에서 고서 수집가 배익기씨가 집 수리를 위해 짐을 정리하다 발견하였다며 안동 MBC에 제보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안동본'과 '상주본' 단둘뿐이다. 상주본은 굳이 가격으로 따진다면 1조 원 이상의 가치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는 고문서 전문가와의 인터뷰가 방송에 실린 적도 있다. 현재 배익기씨가 이 책을 1조원의 10분의 1인 1000억 원에 팔겠다는 이야기는 이 방송 인터뷰를 근거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상주의 골동품상 조모씨가 "상주본은 원래 내 가게에 있던 물건인데, 배씨가 훔쳐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소유권 분쟁이 시작되었다. 이는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고, 2012년 대법원은 소유권이 조모씨에게 있다고 최종 판결했다. 이에 조모씨는 해례본을 문화재청에 기부하기로 하였고, 2012년 5월 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증식을 가졌다. 이로써 훈민정음 상주본은 정부 소유가 되었다. 물론 실물은 배씨가 내놓지 않고 있어 영인본만으로 기증식이 이루어졌다. 영인본(影印本)은 원본을 사진 촬영해 그것을 원판으로 하여 과학적 방법으로 복제한 책. 그리고 조모는 얼마 안가 사망하였다.

문제는 그 난리통에 상주본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이다. 경찰이 배씨의 집을 압수수색까지 했지만 행방을 찾지 못했다. 배씨는 상주본을 낱장으로 뜯어서 몰래 숨기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문화재 보호법 위반(낱장으로 뜯었으니 일단 문화재 훼손에 해당된다)으로 구속 기소되었다. 검찰은 징역 15년을 구형하였고, 2012년 2월 9일 대구지방법원 상주 지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는 '소유권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를 내놓지 않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하였다.

그런데 같은 해 9월 7일 대구고등법원은 항소심에서 배씨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이 상고하였으나 2014년 5월 29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면서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다. 이는 재물손괴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무죄로 판단한 것일 뿐이지 배씨의 소유권을 인정해준 판결은 아니었다. 결국, 상주본의 소유권은 이미 국가로 넘어갔지만 실물은 배익기씨가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아직까지 실제 가지고 있는지는 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어떤 책인가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 즉 훈민정음이라는 문자 체계의 사용 방법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책의 제목이다. 1940년에 와서야 비로소 다시 발견되어 한글이 어떤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는 책이다. 훈민정음 언해본에는 제작 원리 내용이 실려있지 않았기 때문에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한글의 창제에 대한 여러 가지 구구한 추측이 난무했다.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한글이 계통적으로 독립적인 동시에 당시 최고 수준의 언어학, 음성학적 지식과 철학적인 이론이 한글에 적용되어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해례본의 발견으로 인해 한글 창제의 원리에 대해 많은 것들이 확인되고 알려지긴 했는데, 사실 그 내용이 꽤 어려워서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 한글 원리에 대한 해석에 분명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도 있다. 자음 글자의 경우 혀나 입술 같은 발성 기관을 본떠 만들었다고 쓰여있지만 모음 글자의 경우 성리학 이론과 관련된 천(天), 지(地), 인(人)을 가져와서 만들고 조합한 것이라 서술되어 있어서 학자들의 해석이 분분하다.



전형필과 안동본(원본·간송본)

안동본은 초간본, 즉 원본으로 여겨지는 해례본이자, 최초로 발견된 해례본이다. 1940년대에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된 후 간송 전형필이 입수하여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보관 중이다.

안동본은 일제 강점기의 국문학자 김태준의 제자였던 이용준에 의해 그 존재가 처음 밝혀졌다. 이용준이 처가 서고에서 발견하고 김태준에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용준은 잘 보관할 만한 사람에게 넘기고 싶다고 말했고, 김태준은 당시 문화재 수집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던 간송 전형필을 떠올렸다. 김태준은 전형필을 만나 해례본 이야기를 했고, 전형필은 그 자리에서 은행으로 달려가 1만1000원을 찾아와 1000원은 김태준과 이용준에게 사례금으로 주고 1만 원은 해례본 값으로 치렀다. 그때 당시의 물가로 따지면 기와집 열채 값에 해당되는 금액이었고, 현재의 물가로 환산하면 무려 30억~50억 원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전형필은 이것을 사들이고 나서 광복이 될 때까지 이 해례본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다. 한국 문화를 철저히 말살한 일제 강점기 말기에 한글 창제 원리를 자세히 설명한 이 책이 들켰다면 좋지 못한 꼴을 당할 것은 당연지사였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피란갈 때 이 책을 먼저 챙길 정도로 애지중지하며 보관했다. 지금까지 해례본이 이어져 내려온 것은 그런 간송 선생의 노력 덕이며, 1956년 이 소장본을 바탕으로 사진을 촬영하여 만든 영인본이 제작되었다. 전형필은 영인본 제작을 위해 이 소장본을 흔쾌히 내놓았다.



언어는 민족정신을 담은 그릇

세종 28년(1446) 17자의 자음과 11자의 모음인 28자로 구성된 훈민정음이 반포됐다.

이후 573년이 흐른 지금까지 긴 세월동안 한글은 살아남았다. 특히 일제 강점기, 조선의 민족정신을 없애기 위해 혈안이 된 일본은 훈민정음 해설서인 해례본의 진위를 허구로 몰아갔다. 또, 해례본을 찾아 없앤다면 조선 초까지 소급되는 세종조의 한글 창제의 신화는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우리 정신을 담는 그릇의 뿌리와 기원을 허구화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발견은 일제로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와 전쟁 중에도 해례본을 찾고 지키는데 사활을 걸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격에 대해 '1조 원, 1000억' 등등 이야기가 많지만, 단연코 그 가격은 '0'이다.

하나의 나라, 하나의 민족정신을 담은 그릇이 언어다. 가격을 매길 수 있겠는가.

관련기사 김석하의 스토리 시사용어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