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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 코앞…홍콩 170만명 폭우 속 비폭력 시위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8/18 08:11

SNS “폭력진압 빌미 주지 말자”
“아이들 미래위해 송환법 철폐”
폭우 맞으며 집회, 충돌은 없어

시위대 “경찰자세 중국군과 흡사”
50대 간호사 “이렇게 시위해도
람 장관 귀막아 답답해서 나왔다”

박성훈 기자, 혼돈의 홍콩 가다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가 11주째 이어지고 있다. 18일 오후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린 집회에서 홍콩 경찰이 시가행진을 불허한 가운데 시민들이 집결해 있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폭우 속에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주최 측인 민간인권진선은 이날 5대 요구사항(송환법 철폐, 시위대 ‘폭도’ 명명 철회, 체포자 석방, 독립적 조사기구 설립, 보통선거 실시)을 홍콩 정부가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AFP=연합뉴스]






우려했던 충돌은 없었다. 대신 시민들은 폭우를 맞으며 광장에서, 거리에서 구호를 외쳤다.

“송환법 철회하라”(Withdraw the bill), “홍콩에 자유를”(Free Hong Kong)

18일 오후 2시30분(현지시간) 홍콩 빅토리아 파크 집회 현장. 중국 본토의 무장 군경이 10분 거리인 광둥성 선전만에 집결해 있고, 경찰이 시위대의 폭력 행위에 강경 진압을 예고했지만 큰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집회는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시위대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폭력 진압의)빌미를 주지 말자”는 글을 공유했다.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원은 5~6살 아이를 데리고 나온 30대 가장, 20대 대학생, 40~50대 중장년까지 다양한 연령대 시민들로 꽉찼다. 주최 측은 이날 집회에 170만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아이를 데려온 제이슨(34)은 “아이들에게 미래가 있어야 한다”며 “홍콩 정부는 반드시 시민들의 다섯 가지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5대 요구는 ▶송환법 철폐 ▶시위대 ‘폭도’ 명명 철회 ▶시위 체포자 석방 ▶독립적 조사기구 설립 ▶보통 선거 실시다.

자신의 직업을 간호사라고 밝힌 50대 여성 민은 “캐리 람 행정장관이 시민들이 이렇게 시위하는데도 (요구사항을) 듣지 않아 답답해서 나왔다”며 “송환법 철회를 못박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환법 철회는 지금 홍콩 시위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홍콩 범죄인을 중국 정부가 데려가 조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이 법안은 홍콩 시민들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쥐도새도 모르게 중국 본토에 붙잡혀 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6월 4일(100만 명), 6월 15일(200만 명) 대규모 시민이 거리 시위에 나선 이유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대부분 검정색 옷을 입었다. 한 20대 학생은 경찰이 검은 복장이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체포에 대한 두려움이다. 경찰의 폭력 행위에 항의하는 뜻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집회엔 한국에선 흔히 볼 수 있는 대형 브라운관이나 식전 행사인 율동, 노래가 없었다. 그저 진행자가 구호를 외치면 모두 따라하고 함께 함성을 지르는 게 반복됐다. 광장 뒤쪽에선 집회 진행자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시민들은 울려퍼지는 구호를 듣고 따라했다.

이날 집회를 주도한 건 홍콩 시민단체연합체인 민간인권진선(民間人權陣線·Civil Human Rights Front)이다. 지난 6월 200만 시위를 이끌었던 단체다.

“대륙말 하는 경찰, 주둔군 번호판 … 중국군 이미 홍콩 투입”




18일 오후(현지시간) 홍콩에서 열린 송환법 반대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과 아이들이 경찰의 과잉진압을 규탄하는 그림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민진에서 집회 진행을 맡고 있는 샘입(32)은 “경찰이 남용한 폭력에 대해 항의하는 것이 이날 집회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민진은 이번 시위를 앞두고 경찰에 거리 행진 허가를 요청했지만 홍콩 경찰은 불허했다. 민진은 “폭력이 예상되더라도 행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고 맞섰다. 경찰은 빅토리아 파크 내 시위만 합법이라며 집회를 허가했다. 그러자 민진 측은 홍콩 시민에게 일단 빅토리아 파크로 와달라고 주문했다. 집회 장소에 모인 인원이 10만 명이 넘으면 자연히 넘쳐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지기 때문이다. 샘입은 “공원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을 넘겨 자연스레 거리 행진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제시한 선을 지키면서 거리 행진도 하는 묘수인 셈이다. 물이 넘치면 자연스레 밖으로 흐르는 이른바 ‘유수식(流水式)’ 집회다.

집회 참가자들은 계획대로 움직였다. 공원 안에 있는 시민들이 조금씩 밖으로 나왔고 다시 밖에 있던 시민들이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비가 내렸고 우산을 든 시민들의 움직임은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빠져 나간 시민들은 질서정연하게 홍콩 시내 거리를 행진했다. “홍콩 사람 파이팅” “5대 요구 하나도 뺄 수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대표적 쇼핑 거리 코즈웨이베이, 정부청사가 있는 에드미럴티, 금융기관이 밀집해 있는 센트럴 지구까지 홍콩 시내에 구호 소리가 들렸다.

이날 집회는 최근까지 경찰과 시위대를 막론하고 폭력 행위에 대한 비판이 비등한 상황에서 열렸다. 주최 측인 민진은 최대한 평화 시위 방식을 택했고 시민들도 적극 협조했다. 다만 이날 집회 참가자 수는 지난 6월에 비해 확연히 준 모습이었다.

시위대, 경찰과 같은 검은색 복장

홍콩 시위의 동력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중국군 개입 가능성과 홍콩 경제 추락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홍콩 시민들의 ‘우려’가 반영된 결과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편 이날 홍콩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가 진행된 가운데 중국 인민해방군이 이미 시위 현장에 투입된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됐다는 시위대 주장이 나왔다. 홍콩 내 주둔하고 있는 중국군이 시위 진압에 동원됐다는 주장이다.

홍콩침례대 총학생대표인 펑종신(方仲賢·23)은 17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정황들로 볼 때 이미 중국 군대가 홍콩 시위에 개입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 대학생들의 시위를 이끌고 있으며, 이날 빅토리아 파크 대규모 시위 주최 측 일원이다. 지난 6일엔 경찰에 체포됐다 47시간 만에 풀려났다.

그는 지난 5일 홍콩 시내 타이포 쇼핑몰 집회를 증거로 들었다. 시위대가 당시 찍은 영상에는 무장 경찰 일부가 중국어로 “통즈먼, 나비엔(同志?,那?…)”이라고 다급하게 말한다.(1:38 영상 중 38초) "동지들, 저쪽에…(시위대가 있어)”라는 뜻이다. 중국어와 홍콩 광둥어의 발음은 전혀 다르다.




‘ZG’번호판을 단 홍콩 주둔군 소속 구급차가 시위 현장 부근에서 포착돼 시위대 학생들 사이에 SNS를 통해 급속히 공유됐다. [페이스북 캡처]





지난 11일엔 홍콩 주둔군 번호판을 단 앰뷸런스가 시위 현장에서 목격됐다. 주둔군 구급차가 있던 곳은 시위 장소에서 150m 떨어져 있었다. 차량의 번호판은 ‘ZG’로 시작된다. 이는 ‘홍콩에 주둔한다’는 뜻의 ‘Zhu Gang(駐港)’의 약자다. 홍콩 주둔군 차량은 ‘ZG’로 시작되는 번호판을 사용한다. 대만 매체인 자유시보에 따르면 2016년 홍콩 주둔군 당국이 ‘ZG’는 주둔군 차량 번호라고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홍콩 SNS 상에는 중국 선전에 들어온 군용 차량과 같은 주둔군 군용 차량이 시내를 지나다니는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다. 시위 현장을 지나가던 한 여성이 이유없이 무장 경찰에 붙잡혀 쓰러지는 영상이 SNS상에 퍼졌는데, 이 영상 속 무장 경찰의 자세가 중국 군대의 자세와 흡사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펑종신은 "홍콩 경찰은 기마자세로 서서 진압봉을 높이드는 식으로 시위대에 대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 국방부에 등재된 홍콩특별행정구주둔군법에 따르면 ‘홍콩 주둔군은 중국 중앙정부의 지시를 받는다’(1장 3조)고 명시돼 있다. 주둔군의 임무는 ▶홍콩 침략에 대한 방어와 홍콩의 안전 ▶군사시설 관리 ▶외국 군대 동향 대응(2장 5조)이다.

중국서 온 주둔군 6000~1만명

홍콩의 안전이 불안하다고 판단할 경우 중국 중앙정부가 합법적으로 주둔군을 투입할 수 있는 셈이다. 홍콩 정부가 중국 정부에 요청할 경우도 주둔군 투입이 가능하다. 홍콩 주둔군은 현재 6000~1만 명 수준으로 홍콩에 12~14개 부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날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총편집인인 후시진(胡錫進)이 홍콩 시위에서 중국 기자에 대한 폭행이 있을 것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후시진은 이날 오후 1시58분 자신의 웨이보(微博, 중국판 트위터)에 "홍콩 반대파가 계획한 오늘 시위에서 내지(內地, 중국 대륙) 기자를 상대로 폭력 행동이 있을 것이란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예측은 이날 시위 전 나온 것으로, 이게 사실이면 홍콩 시위대의 계획을 사전에 알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난 13일 밤과 14일 새벽 환구시보 기자 푸궈하오(付國豪)가 홍콩 공항 취재 도중 시위대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한 바 있다. 당시 푸궈하오는 얻어맞으면서도 "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고 외쳐 현재 중국에선 ‘영웅’ 대접을 받는 상태다.




박성훈 기자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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