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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책맹'을 걱정하는 오지랖

[LA중앙일보] 발행 2008/12/11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08/12/10 19:36

이종호/편집위원

독서에도 등급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의무감으로 읽는 것은 하급이다. 수험 공부를 위해 업무와 관련된 지식을 얻기 위해 읽는 것들이 여기 해당한다. 이런 독서는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자칫 괴로울 수 있다. 심하면 책읽기의 흥미 자체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의무감으로 읽되 즐길 줄 안다면 한 차원 높은 단계다. 기독교인의 성경 읽기나 우등생의 독서법이 이것이다. 재미있어 하니 머리에 속속 들어오고 생각하며 읽으니 남는 것도 많다. 읽을수록 지식이 되고 인생의 자양분으로 쌓이는 게 이 단계의 독서다.

그래도 최고 등급은 의무감과는 상관없이 읽는 것 자체를 즐기는 독서다. 좋아하는 분야는 물론이고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낯선 분야도 끊임없이 도전한다. 책을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뒤엔 영혼의 충만감을 느낀다. 이들에게 책은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물이다.

독서는 정독(精讀)과 다독(多讀)의 효용이 따로 있고 속독(速讀)과 완독(玩讀)의 필요도 때에 따라 다르다. 거기다 사람마다 읽는 성향과 방법까지 상이하니 일률적으로 등급을 정할 바는 못 된다. 그럼에도 굳이 등급을 매겨 보려는 것은 이민자들이 아예 책에 눈조차 맞추지 않는 책맹(冊盲)이어서 아무런 단계에도 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오지랖 때문이다.

한국의 어떤 유명한 목사님은 어떻게 하면 지도력을 기를 수 있는가를 묻는 젊은이들에게 생명을 걸고 책을 읽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취미로가 아니라 열심히도 아니라 생명을 걸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도 책을 읽었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옥중 다독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고등학교 때 이미 상당 수준의 독서량을 가지고 있었던 오바마는 한 때 수도승처럼 책을 봤다고 했다. 모두 생명을 걸고 책을 읽었다는 말이다.

책을 읽는 자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의 검증이 끝난 명제다. 한 나라의 국력은 인재경쟁에 좌우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재경쟁은 교육경쟁이요 결국은 독서 경쟁이다. 그래서 책을 읽지 않는 민족은 희망이 없는 민족인 것이다.

2007년 통계를 보니 한국인들의 1인당 연평균 독서량은 한 달에 한 권도 안 되는 10.5권이었다. 2004년에는 13.9권이었다고 하니 3년새 3.4권이나 줄었다. 일본이 40권 이스라엘은 무려 64권이라는데 거기 비하면 한참 민망하다.

동포사회는 좀 나을까. 올해 중앙일보 한인업소록에는 남가주 일대 한인 서점과 출판사가 모두 47개 올라 있다. 또 다른 업소록에는 만화방까지 포함해서 55개가 나온다. 남가주 한인 인구가 100만을 훨씬 웃도는 것이 비하면 심히 초라하다.

하긴 요즘은 독서 인구를 서점 수로만 가늠하긴 어렵다. 아마존 닷컴.예스24.알라딘 같은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는 사람도 꽤 될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의 평균보다 많을 것 같진 않다. 책값 비싸지 이민 생활 바쁘지 마음먹고 서점 한 번 들르기가 쉽지 않다는 사람이 꽤나 많기 때문이다.

연말이다. 불황의 그늘이 깊다지만 그나마 주고받을 선물을 생각하는 때다. 그렇다면 올해 선물은 책이 어떨까. 고르기 힘들다면 도서상품권도 괜찮겠다.

독서는 다른 사람의 피땀 어린 사색과 공부의 수고를 내 것으로 옮겨 오는 통로다. 책 선물로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를 한 번 줘 보자는 것이다.

오늘 살아가기가 팍팍한가.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막막한가. 책은 그럴 때 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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