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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투병 생활에서 얻은 것들

지난날 뜻밖에 건강을 잃어 자유를 박탈당했다. 오랜 투병생활로 인해 표정마저 잃었다. 육신과 정신적 고통으로, 마음을 다스려도 어쩔 수 없이 우울해진다. 건강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 것이기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청천벽력이요 좌절이다. 하나 좌절 앞에서도 좌절하고만 있을 수 없어, 넘어진 자리에서 돌이라도 들고 일어나는 나의 의지를 발견하는 계기였다.

어느 쓸쓸한 가을 날 해 저물녘 정원에서 난 그만 내 모습같이 시들어 말라빠진 흉한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어쩌면 저 나무는 내 모습과 저리도 닮았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서글픔에 순간 감정이 흔들렸다. 내가 이제 값비싼 옷을 사 입은들 다 시들은 나무에 치장을 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를까. 그래도 힘내 환자티 나지 않게 예전처럼 제대로 하고 다녀야지, 혹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도 든다.

처음 병났을 땐 완치되지 않으리란 생각을 못했다. 그때 그이는 병난 것도 운명이려니 하라고 했다. 난 섭섭히 들으며 무슨 이 정도에 운명 운운하나 했다. 한데 정말 그 말이 맞았다. 그이가 선견지명이 있어서도 아니고, 평생 아이들과 낯선 나라 낯선 땅에서 건강하게 혼자서 휘젓고 다니며 일 잘하던 내가 답답해서 조바심칠까 마음을 느긋이 가지라는 뜻이었던가 싶다.

병 나서 크게 잃고 얻은 것도 있으며 철 들었다. 좋게 표현해서 대범해졌다고 할까. 지금 난 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데도 하나도 놀라지 않고 담담할 것 같다. 부러운 것도 좋은 것도 없이 순간 순간을 감사로 지나간다. 어쩌면 희로애락을 관장하는 오감이 죽어 가는 건 아닐까 싶어 더럭 겁이 나기도 한다. 결코 그래선 안 될 텐데 어느새 인생을 통달했나.



살면서 생로병사라든가 생사화복 같은 단어를 지금만큼 많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실은 좋아도 싫어도 그 같은 단어들이 내 곁에 바짝 다가들어 날마다 피부로 느낀다면 아마 내가 환자라는 사실 이외에도 인생의 골이 깊게 팰 정도로 연륜이 쌓여서가 아닐까.

밤새 안녕이라더니, 자고 나니 그런 경험을 하며, 결코 인생은 보장이 없다는 것을 절절히 느낀다. 덧없는 인생, 시간을 거머쥐는 손이 없으니 정지시킬 수 없는 젊음과 욕구가 시간 안에 녹아 버리지 않았을까.

병 나기 전 과연 내가 몇 번이나 물과 공기, 빛과 건강 같은 것에 대해서 감사했던가. 그 모두는 정녕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너무나도 마땅히 누릴 기득권이라 여기지 않았던가. 사람은 진정 어려움이 닥치고 나서야 지난 날의 모든 좋은 조건들과 누렸던 것들에 대해서 깨우치는 아둔함을 지닌 것이 아닐까.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날마다 삶의 목적을 갈무리 한다면 내게도 또다시 의지대로 살 수 있는 날이 허락되지 않을까.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어려움과 고통 중에서도 감사하고 이를 견뎌내는 마음의 상태라고 한다. 비록 의지대로 살지는 못해도 나는 나의 신에게 감사한다.


박유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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