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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희 박사의 '몸&맘'] '환기 치료법'을 아시나요

황세희 박사
황세희 박사  

[LA중앙일보] 발행 2019/08/28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9/08/27 20:49

미국 연수를 다녀온 명문대 의대 정신과 교수 Z씨가 귀국 후 제자들에게 들려준 사연이다. 이미 제자들 사이에선 Z씨가 첨단 의료의 산실이라는 미국 병원에서 뛰어난 환자 치료 성적을 거두었다는 놀라운 소문이 퍼져 있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임상의학 수준이 미국과 어깨를 견주고 있다. 하지만 학계를 은퇴한 지도 10년 가까운 Z씨가 미국에서 의사생활을 할 시절의 국내 의료 수준은 미국보다 한참 낙후돼 있었다. 특히 정신과 환자를 치료하려면 충분한 상담 과정이 필요하다. Z씨가 좋은 치료를 하기 위해선 영어를 모국어처럼 할 수 있어야 했다는 말이다.

제자들은 궁금했다. 아무리 우수한 인재였지만 Z씨는 국내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도미 전엔 미국 생활을 한 경험도 없다. 그런 그가 어떻게 미국 의사들로부터 '동양에서 온 신비한 명의'라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치료를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이런 의구심을 다음과 같은 명쾌한 설명으로 해결했다.

"한국에서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지만 막상 미국에 가니 간단한 말도 알아듣기 힘들었어. 특히 환자들이 복잡한 사연을 털어놓을 땐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 하지만 환자의 표정을 통해 '뭔가 속상한 일이 있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받고 싶어한다'는 사실은 느낄 수 있었어. 나로선 당연히 환자의 말 한마디라도 더 알아들으려고 경청했고, 말을 마친 환자가 나를 쳐다볼 때면 매번 '당신의 힘든 상황과 속상한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위로의 말을 많이 했어. 그런데 고맙게도 나와 상담한 뒤엔 환자들의 마음이 편해지고 정신상태가 좋아졌던 거야. 환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나는 졸지에 '동양에서 온 신비한 명의' 취급을 받게 됐던 거지."

Z교수는 정신과 상담 치료 핵심인 '환기 치료법(ventilation therapy)'을 제대로 활용함으로써 이국 땅에서 단숨에 명의가 됐던 것이다. 환기요법은 일상에서 겪게 되는 힘들고 속상한 일, 혼자서만 속으로 삭여 왔던 사연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실컷 하소연함으로써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치료법이다.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란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 못하던 이발사가 속병에 시달리던 어느 날, 구덩이를 판 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실컷 외친 뒤 건강을 되찾았다는 옛 이야기에서 보듯, 고등동물인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어야 건강한 심신을 유지할 수 있다.

최근 직장인의 꿈이자 선망의 대상인 초일류 기업의 엘리트 임원이 '살기 힘들었다'는 유서를 남긴 채 투신했다. 완벽해 보이는 그 누구의 마음 속에도 해결하기 힘든 걱정거리는 있게 마련이다. 어차피 당장 내 힘으로 없애기 힘든 고민이라면 일단 내 마음을 공감해 줄 벗을 찾아 속상한 심정부터 털어놓는 게 우선이다. 종교적인 고해성사나 정신과 상담을 받았을 때처럼, 가슴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해소되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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