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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만큼은 '한·일 갈등' 없었다

한국전 때 싸운 일본계 미군 5600명
한국 정부, 생존 참전용사들에 첫 표창

김완중 LA총영사(왼쪽)가 샘 시모구치 일본계 미국인 참전용사회 회장(가운데)에게 국무총리 표창장과 수치를 전달하고 있다. 오른쪽은 아키라 무토 일본총영사. 김상진 기자

김완중 LA총영사(왼쪽)가 샘 시모구치 일본계 미국인 참전용사회 회장(가운데)에게 국무총리 표창장과 수치를 전달하고 있다. 오른쪽은 아키라 무토 일본총영사. 김상진 기자

"나는 90년 전(1929년) 미국에서 태어났어요.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친구들과 미군에 자원했죠. 전쟁은 참혹했습니다. 피란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요…."

29일 LA다운타운 일미문화원 앞 한국전쟁 전몰자 기념비 앞에 선 미노루 토나이(90)씨는 '미안함'을 되뇌었다. 토나이씨는 70년이 흐른 지금까지 한국전쟁 아픔을 잊지 못했다. 그의 말은 '아군과 적이란 이분법이 무의미하다'는 것처럼 들렸다.

토나이씨는 "여기(전몰자 기념비)에 적힌 이름 속 친구와 같이 전쟁터에 있었다. 내게는 한국전쟁이 남의 일이 아니다. 전쟁으로 (남북한은) 쑥대밭이 됐고 사람들은 머물 곳이 없었다. 미안함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쟁 참화 속에서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싸웠다. 미국 태생으로 남한을 위해 싸운 UN연합군 소속이었지만, 미국이 참전용사에게 헌사하는 '영웅'이라는 수식어는 끝내 부담스러워 했다. 한 인간으로서 전장에서 살아남았고, 전사한 일본계 미군 전우 255명의 넋을 위로할 뿐이다. 토나이씨와 전우들이 1996년 '일본계 미국인 참전용사회(Japanese American Korean War Veterans USA)'를 결성해 활동해온 이유다.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 부른다. 일본계 미군 참전 역사는 더 잊혀진 사실로 외면받았다. LA총영사관에 따르면 한국전쟁 기간 일본계 미군 5600명은 남한을 돕기 위해 UN연합군으로 참전했다. 3000명은 전장에 배치됐고 255명은 전사했다. 일본계 참전용사는 미군 사망률보다 2배나 높을 정도로 최전선에 배치됐다. 일본계 참전용사 일부는 한인사회 선구자인 고 김영옥 대령 부대원으로 활약했다. 2007년 연방 하원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때도 일본계 참전용사들은 지지했다.

잊혀진 이들의 공적을 기리는 행사가 29일 일미문화원 전몰자 기념비 앞에서 열렸다. 이날 LA총영사관(총영사 김완중)은 한국 정부를 대신해 토나이씨를 비롯한 일본계 미국인 참전용사 회원들에게 '국무총리 표창'을 수여했다. 우리 정부가 남가주의 일본계 참전용사들에게 수여한 최초의 표창이다.

이날 표창 전달식에는 생존한 일본계 참전용사 7명과 LA일본총영사관의 아키라 무토 총영사도 참석했다. 김완중 총영사는 "일본계 미군은 한국을 위해 싸웠다. 연합군 위문행사를 하는 동안 이들은 (일본계라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다"면서 "지난 4월 UN 참전용사 공적을 발굴하고 포상하기 위해 국무총리 단체 표창을 건의했다. 정부도 일본계 미군 공적을 기리려 표창 전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완중 총영사 "늦어서 죄송"
일본총영사 "표창 감사하다"


이날 이 자리에서만큼은 한일 양국간의 갈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키라 무토 일본총영사는 “일본계 미군 참전용사가 가장 많았던 남가주에 부임해 영광”이라며 “여러분은 동북아지역 안보, 일본과 미국·한국과 미국 관계개선을 위해 활약했다. 한국 이낙연 국무총리가 표창을 전수해 기쁘다”고 강조했다.

일본계 미국인 참전용사회(회장 샘 시모구찌) 전우는 토나이씨를 비롯한 9명만 남았다. 이들은 지난 1월 신년하례식을 끝으로 공식 모임을 종료했다. 다들 고령으로 거동이 힘들어서다.

표창 전달식 후 김완중 총영사는 아키라 무토 일본총영사, 일본계 미군 참전용사들과 점심을 먹었다. 김 총영사는 “표창 전수를 진작 했어야 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며 미안함을 전한 뒤 “한일관계가 어려운 지금 일본총영사와 좋은 메시지도 전하게 됐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토나이씨는 “지난 2001년 전쟁 후 처음으로 한국(김포공항)을 방문했을 때 내 눈을 믿지 못했다. 절망의 땅에서 세계 경제대국을 이룬 한국인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며 말을 맺었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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