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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는 장수와 동반, 안티에이징만 외치지 말라

황세희 /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장
황세희 /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장 

[LA중앙일보] 발행 2019/09/04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9/09/03 18:10

황세희의 '러브에이징'
인간 수명 늘어나며 노년기 길어져
사랑·축복의 관점서 노화 바라봐야
장기 기능 저하, 뇌의 변화 이해하고
물욕·독단적 사고 버려야 행복한 삶

에이징(Aging)은 우리 말로 노화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하면서 에이징은 지구촌의 화두가 됐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노화를 거부하고 싶어한다.

그나마 전통사회의 노인은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고 삶의 지혜를 품은 공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노인의 지혜는 실시간 검색으로 대체됐다. 앞으로 사회는 젊음과 청춘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100세 시대다. 고령사회(노인 인구 비율 14% 이상)에 진입한 2017년, 기대 수명은 82.7세, 최빈사망연령(사망자 중 가장 빈도가 많은 연령)은 88세이고 이 수치는 해마다 커진다. 노인이 급증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우리 사회에는 안티에이징(Anti-Aging) 열풍이 광범위하게 불고 있다. 하지만 마냥 안티에이징을 추구한다고 세월의 발자취를 막을 순 없다.

나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

긴 인류 역사에서 장수 사회는 최근에 나타난 혁명적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시대 최상의 건강관리를 받던 왕의 평균 수명은 46세였다. 일반인의 평균 수명은 1940년대 45세, 1960년대 52.4세에 불과했다. 이처럼 호모 사피엔스의 신체는 길어야 50~60년 정도 살도록 설계됐다. 그러다 갑자기 첨단 현대 의학이 도입되면서 인간의 수명은 반세기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아쉽게도 길어진 수명은 노년기에 집중적으로 더해졌다. 오래 살지만 지금의 50세가 과거의 25~30세의 체력을 갖게 된 것은 아니란 얘기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과제는 노년기를 바라보는 시각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안티에이징을 외치기보다는 사랑스러운 노년, 축복의 인생 100세를 위한 '러브에이징(Love-Aging)'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노화는 장수에 동반되는 자연 현상이기 때문이다.

러브에이징의 첫걸음은 노화로 인한 심신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노화는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져 병에 취약한 상태다. 따라서 노인이 되면 "지금도 건강은 젊은이 못지않다"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보다는 자신의 체력을 파악하고 그것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일단 노화가 진행되면 각종 장기의 기능이 저하돼 만성병에 걸리기 쉽다. 또 50~60년 이상 사용한 골격은 마모되고 근육이 줄면서 순발력·유연성 등이 모두 떨어져 쉽게 피로해지고 관절통도 잘 생긴다. 따라서 몸이 아플 땐 장수의 자연스러운 대가로 생각하고 관리법을 익혀야 한다. '죽을 때까지 안 아프고 살고 싶다'는 생각은 불로초를 찾는 진시황의 과욕과 다르지 않다.

몸이 쑤신다면 아침·저녁 10분 이상 스트레칭을 하면서 관절 부담을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 운동도 노화된 내 몸에 맞아야 보약이다. 만일 청·장년기에 산악자전거, 테니스, 스키 등 스피드 운동을 즐겼더라도 노년기에는 수영, 고정식 자전거, 태극권 등 관절 부담이 적은 종목이 적합하다.

러브에이징을 위해선 뇌의 변화를 인정하고 대처하는 일도 중요하다. 흔히 노인이 되면 학습 능력이나 기억력은 떨어져도 성격은 온화해진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노화된 뇌세포는 생각의 유연성·응용력·추상력 등을 줄여 매사를 자신의 경험에 의존해 판단하게 한다. 그 결과 본인의 생각을 중심에 둔 채 배려 없는 배타적 태도를 취하기 쉽다. 옛것과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고집불통이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노화한 뇌의 전두엽에서 일어나는 퇴행성 변화 때문에 욕망과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지나쳤을 사소한 일에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곤 한다. 극단적인 경우, 배우자나 자녀와 격한 대립 끝에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물론 노인이 된다고 해서 누구나 인격이 퇴보하고 난폭해지는 것은 아니다. 노년기 언행은 젊을 때 인격이 강화해 표현될 뿐, 없던 성격이 새로 만들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치매 환자에게서도 나타나 '착한 치매' '나쁜 치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노년기에는 물욕도 점점 더 커지기 쉽다. 공자는 노년기에 소유욕을 경계해야 한다고 일갈한 바 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체력이 떨어지는 노년기에는 자신을 내세울 유일한 방법이 소유(得)라 생각해 물욕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한창인 시절에 존경을 받던 일부 명사가 노인이 되면서 세간의 비난도 불사하고 돈·권력·명예를 갈망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다.

긴긴 노후를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랑을 주고받는 러브에이징 시기로 만들려면 "내가 왕년에는…" 식의 독단적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그 대신 '조선 시대 왕보다 훨씬 더 편리한 세상에서 두 배나 오래 사는 행운'에 감사하면서 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품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기대 수명 82.7세로 해마다 늘어나

러브에이징은 행복한 100세 시대를 위해 노인뿐 아니라 모든 연령층이 고민해야 할 삶의 지혜이자 전략이다. 평생 청춘으로 살 방법도 없고, 노인 따로 청년 따로 살 수도 없다. 따라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부터 건강한 생활 습관과 더불어 좋은 인격과 지혜를 갖춰 사랑으로 교감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바오로의 '사랑의 송가'가 밝히듯, 사랑 없는 인생은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은가. 과욕을 버리고 인생 후반기 30~40년을 사랑받는 사회인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노욕(老慾)을 부리면서 추하고 외롭게 보낼 것인가. 각자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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