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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조성민 "국민스타 '최진실'과 사는것 버거웠다"

[조인스] 기사입력 2008/12/22 11:47

3. 국민스타 최진실의 남편 시절

“야구스타 조성민은 사라지고 최진실의 남편으로…”

조성민은 최진실의 49제 하루 전날 최씨의 묘지가 있는 갑산공원에 다녀왔다. 묘지에 선 채 그는 40여 분간 차가운 땅 속에 묻혀 있는 최씨에게 말을 걸었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그리고 너무 미안하다. 처음 결혼할 때와 마음이 변한 것, 외롭게 혼자 가게 한 것, 지금의 이런 일이 벌어지게 한 것도 모두 미안하다. 내 진심을 알고 있지 않느냐고….” (<여성조선> 2008년 12월호 인터뷰에서)

최진실은 그가 한때 사랑했던 여인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톱스타 최진실의 팬으로 대형 브로마이드를 걸어놓고 흠모했다. 세인들의 축복을 받으며 최진실과 결혼할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2000년 7월 조성민은 결혼 발표를 위해 한국에 들어와 기자회견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팬이었고, 알고 지내면서 더 좋아졌다. 나와 생각이 같고 가치관이 같은 여자였다. 처음 만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이 여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사랑스럽다.”

공항에서부터 수백 명이 몰려든 취재진과 팬들의 환호 속에서 두 사람은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2000년 12월5일 둘은 만인의 부러움을 받으며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프로야구 스타와 톱스타 여배우의 결혼은 순탄하지 못했다. 2001년 최진실은 첫 아들 환희를 출산하고 다음 해 MBC 주말 극 <그대를 알고부터>로 3년여 만에 방송에 컴백했다.

조성민도 부상으로 더 이상의 재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환희가 출생한 그 해 슈크림빵 ‘비어드 파파’ 프랜차이즈를 시작하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 조성민과 최진실의 불화가 시작된 것은 이 즈음이다. 최진실과 조성민은 결혼 2년 만에 별거를 시작했다. 둘은 2004년 9월 공식 이혼하고 3년9개월 만에 파경을 맞는다.

최진실과 조성민의 불화의 계기가 된 것은 조성민의 외도로 알려졌다. 조성민은 슈크림빵 프랜차이즈를 시작하며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돈 많은 미모의 재력가로 알려졌던 그녀를 조성민은 연인관계가 아니라 사업 투자자라고 끝까지 부정했지만 결국 둘은 이후 연인관계로 판명났다. 이혼을 요구한 것은 최진실 쪽이었다.

조성민은 최진실과 이혼한 다음해인 2005년 7월 지금의 부인과 재혼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최진실과의 별거 시절부터 시작된 그를 향한 비난의 화살은 더욱 거세게 퍼붓기 시작했다. 아이와 조강지처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 파경을 맞은 그를 어느 누구도 따뜻하게 바라볼 리 없었다.

어떤 이유로도 조성민의 외도와 이후 그의 경솔했던 행동들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다만 한때 화려한 스타로 마운드를 누볐던 야구스타가 치명적 부상을 당하고 마운드를 떠나야 했을 때 느꼈을 외로움을 한 번쯤 돌아보자는 것이다. 미니인터뷰 - 백재호 한화 이글스 코치
“형은 아이들을 먼 발치에서 혼자 보고 온 적도 있다”
조성민은 2007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챙기는 후배가 재호 한 명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백재호 코치는 조성민의 신일고 1년 후배다. 대학 시절에도 자주 만났고, 특히 조성민이 한국으로 돌아와 한화 이글스 선수로 뛸 때 룸메이트로 있으면서 둘은 호형호제하며 각별한 정을 쌓았다.

최진실과의 결혼 실패 후 언론에 뭇매를 맞을 때도 둘은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2008년 12월15일 백 코치와 전화통화를 했다. 백 코치는 “형은 최진실 씨와 별거 상태에 있을 때부터 만날 때마다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며 “지금까지 형을 만나며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환희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찾아가고 싶었지만 그것도 제대로 못해 마음 아파했다”고 말했다. 찾아가고 싶어도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게 될까봐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는 것이다.

최진실이 사망한 직후에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조성민이 찾아와 “‘그 동안 아내와의 불화로 아이들과 함께 나누지 못한 시간들이 많아 이제 아버지로서 더 자주 만나고 잘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백 코치는 전했다.

백 코치는 “외할머니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을 형이 반대하지 않았다”며 “사후 재산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오로지 아이들 걱정뿐이었다”고 말했다.

백 코치는 “그 동안 형이 실수한 부분도 있고 언론에 의해 왜곡된 부분도 있지만, 아이들에 대한 형의 애정만큼은 한시도 변함이 없었다는 점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조성민은 2008년 12월8일 아이들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친권과 재산관리권, 양육권을 포기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국민스타 최진실’과 사는 것이 버거웠다”

2002년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몸과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조성민은 측근을 통해 “한국에 돌아왔을 때 ‘야구스타 조성민’보다 ‘최진실의 남편 조성민’으로 불리는 현실이 괴로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언론을 몰고 다니는 톱스타 아내의 뒤에서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아내 최진실’보다 ‘국민스타 최진실’과 함께 사는 것이 그에게는 버거웠을 수도 있다.

지금의 부인은 그가 방황할 때 톱스타 부인 최진실이 채워주지 못했던 빈자리를 채워줬을 것이다. 지난 상처를 잊고 조성민은 지금의 부인과 새 출발을 하려는 참이었다. 최진실이 죽기 직전 조성민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고 괴로워했다는 대목이다.

“한화 이글스에서 노장선수로 뛸 때, 그리고 MBC 야구해설위원으로 있을 때 지금의 아내는 자주 구장으로 찾아와 관중석에서 지켜봤습니다. 일이 끝나면 아내와 집에 가며 ‘오늘 해설은 어디가 안 좋더라. 어느 대목이 좋았다’는 코멘트를 해줬죠. 나를 위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에 마음의 위로를 삼았죠.”

결국 최진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는 무거운 마음의 추를 하나 더 달게 됐다. 지난 몇 년간 그를 괴롭힌 것은 불신의 벽이었다. 믿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성격이 낙천적이어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형· 동생을 스스럼없이 말하던 조성민은 이제 사람을 경계한다. 상처와 두려움으로 몸을 움츠리고 세상으로 향한 문을 닫고 있다.

그의 상처는 가족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조성민의 어린 시절 플라스틱 방망이와 공을 선물하고 최고의 야구스타로 키운 조성민의 아버지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조성민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동안 조성민은 자신의 실수로, 혹은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아이들에게만은 자신이 받은 고통이 대물림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외할머니 정옥숙 씨도 조성민의 친권포기 기자회견 이후 “조성민에게 보냈던 싸늘한 시선을 거둬 달라”고 당부했다. 이제는 그에게도 따뜻한 격려가 필요하다. 조성민이 발표한 ‘친권포기’ 입장 전문
“아이들에게 의무만 다하는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남을 것”
최진실 씨가 고인이 된 지 60여 일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모두가 마음 아파할 때, 나 조성민과 최진실 씨 유족 사이에 고인이 남긴 재산을 두고 뜻이 맞지 않아 다투는 듯한 내용의 언론 보도까지 쏟아지면서 사회적인 논란도 많았습니다. 이로 인해 여러 사람들이 또 다른 상처를 받았습니다.

아이들의 친아버지임을 빌미로 고인의 재산을 욕심내는 파렴치한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게 된 저 또한 남달리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 주변사람들의 고통도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고인의 가족들과 재산이 잘 지켜지는 방법을 함께 상의하고 싶었습니다.

허나 제 의도와 달리 저로 인해 유족들이 더 가슴 아파하는 상황을 접하며 아이들에 대한 고인 가족들의 사랑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들에게 모든 걸 맡기는 것이 아이들을 위하여, 서로의 신뢰 회복을 위하여, 나아가 고인을 위하여도 바람직한 길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유족의 뜻을 더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성급한 의견 표현의 불찰로 인해 오해받을 행동을 한 점은 깊이 송구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에 오늘은 그 사이 고인의 가족들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오해를 풀고 억측을 해소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는 점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저 조성민은 유족 뜻에 따라 법원에 두 아이들에 대한 양육자를 변경하고 법률행위대리권과 재산관리권을 사퇴하는 법적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모든 권리를 아이들의 외할머니인 정옥숙 씨에게 이양하는 절차를 밟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법적 절차 진행과 상관없이 앞으로 아이들에 대한 권리, 즉 양육권·법률행위대리권과 재산관리권 등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점을 밝힙니다. 저와 제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친척들 또한 그 의사를 바꾸지 않겠다는 점도 명확히 밝혀둡니다. 향후 저는 비록 부족할지언정 아이들에게 더 이상의 상처를 주지 않고 오로지 사랑만 베풀어주는 아버지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아버지로서의 의무만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들 그리고 유족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유족이 아이들을 잘 양육할 수 있도록 내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오직 아이들의 행복만을 생각하겠습니다.

저도 대한민국 사회 일원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모습으로 스포츠계와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의 노력으로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 이 사회가 요구하는 당당한 사회인으로 거듭날 것을 약속 드립니다. <끝>

박미숙 기자 splanet8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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