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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상사화가 피었어요

김수영 / 시인
김수영 / 시인  

[LA중앙일보] 발행 2019/09/11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9/10 17:56

상사화란 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몰랐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관 앞뜰에는 무궁화 나무 두 그루가 사시사철 빨간 꽃을 피우고 있다. 그 옆에 나무처럼 키가 큰 선인장이 무성히 자라 키가 내 키보다 배나 크다. 다른 꽃나무들도 함께 자라면서 경쟁이라도 하듯 서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이 꽃들 가운데 제일 힘이 약해 보이는 상사화가 억센 꽃나무 사이에 끼어 아름답게 꽃을 피워올려 나를 울리고 있다. 튼튼한 줄기나 가지도 없고 더욱더 잎사귀도 하나 없고 가녀린 꽃대 위에다 바람에 흔들흔들하면서 버티며 견디어낸 후 아름다운 꽃을 피웠기에 더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진다.

빨간 벽돌로 화단을 둘러놓았는데 그 옆에 난초 뿌리같이 둥글둥글 감자처럼 생긴 뿌리들이 엉겨 붙어 땅 위로 튕구러져 나와 있었다.

땅 속에 파 묻혀 있지 않아 죽을까 봐 자주 물을 주었다. 이 집에 이사 온 후에 늘 관심을 갖고 잎이 돋고 꽃이 피는가 살펴 보았다. 무성한 잎사귀만 피워내고 꽃은 몇 년 동안 피지않았다.

왜 꽃이 피지 않을까 이상히 여겼는데 몇 년이 지나자 잎이 다 죽고 난 다음 꽃대 몇 개가 사람 팔뚝 길이 만큼 자라더니 맨 끝에 예쁜 핑크빛 꽃을 피워 올렸다. 휘청거리는 긴 꽃대 위에 공중누각처럼 뎅그렇게 매달려 잎 하나 없이 꽃만 예쁘게 피어있는 것이 처음엔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제야 이 꽃이 상사화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앞뜰에다 두고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꽃을 몰라보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했던가. 잎이 다 시들어 죽은 다음 침묵을 한동안 지키더니 여러 개의 꽃대에서 올라온 꽃송이들이 두 주 동안 예쁘게 피어 나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봄 여름 동안 그렇게도 싱싱하게 초록색 잎을 피웠는데 꽃을 못 보고 허무하게 죽다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꽃 역시 그렇게도 예쁜 꽃을 피워 올렸는데 반가워해 줄 잎이 하나도 없이 쓸쓸하게 홀로 피어 있다가 죽어가다니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꽃 이름이 상사화(相思花)라고 불리는가.

매화꽃이나 목련꽃은 잎 없이 꽃이 먼저 피지만 나중에 잎이 돋아 함께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상사화는 끝까지 서로가 못 만나고 시들어 죽고 만다. 운명치고는 너무나 비운의 사랑이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일어선다'고 하는데 이 상사화는 주위를 둘로 보아도 의지할 아무것도 없다. 외로움을 견디고 꿋꿋이 버티어 아름다운 꽃을 피운 너는, 절해의 고도에서 너를 만난 기쁨을 모르리라. 너를 사랑한다. 내 가슴 속에 항상 너를 품고 꽃 피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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