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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문학칼럼: “스페인 빌바오”

이번 3년 차 문학 칼럼을 시작하면서 지난날 유서 깊은 도시에서 사색하며 느꼈던 감상과 함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전통을 더듬어보는 감성여행에세이가 욕심 난다. 신문 칼럼 특성상 MS 워드 600words 안에 다 담아내려면 콘텐츠 제약은 물론 글재주도 부족하다. 하지만 한 편 한 편 쓰고 다듬다 보면 ‘당신도 나름 여행 작가다’라는 말을 듣는 날도 올 것이다. 그 첫걸음을 스페인 소도시에서 시작한다.

스페인 북부 항구도시인 빌바오Bilbao는 우리에게 친숙한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보다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덜 알려진 도시이다. 나는 2005년 3월에 “Gas Tech 2005”에 참석하면서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건설된 LNG 수입기지 견학과 함께 이곳이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는 문화도시이면서, 과격한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의 본거지라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도 접했던 특별한 기억이 있다.

마드리드에서 항공편으로 도착한 빌바오의 첫 느낌은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도시를 가로지르는 네르비온 강가에 자리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의 독특한 디자인이 나의 발길을 붙잡았다. 강변의 주위 경관과 잘 어우러져 한 척의 배 같기도 하고, 물고기 여러 마리가 뒤엉켜 헤엄치는 모습 같기도 했다. 외관의 재료는 0.3mm 두께의 티타늄 판, 유리,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다는데, 물고기의 비늘 같은 티타늄 판은 바람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때문에 빛이 반사되는 각도에 따라 매 순간 마다 미술관이 다른 모습으로 비춰졌다.

1997년 스페인 국왕 부처의 참석 하에 개관한 미술관은 빌바오 시가 1980년대 후반에 시작한 공항, 지하철 및 교량 건설 등 도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랜드마크로 함께 건설했다. 빌바오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철강산업과 조선산업으로 번창한 도시였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에 철강 및 조선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긴 후 쇠락의 길을 걷던 빌바오 시를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문화 관광산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구겐하임Guggenheim 재단으로부터 미술관을 유치하는데 성공한 빌바오 시의 선견지명이 놀랍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인해 “빌바오 효과”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한 도시의 건축물이 그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나 효과로, 주로 쇠퇴된 도시에서 새로운 건축물을 통해 도시경쟁력이 올라간 현상을 지칭한다. 도시인구가 40만도 안되는 소도시에 매년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이 100만여 명이라고 한다. 도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리라 짐작된다. 미술 작품에 문외한인 나는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현대 미술 작품보다 미술관 건축물의 조형미와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제프 쿤스의 거대한 ‘꽃 강아지Puppy’와 ‘튤립’이 더 인상적 이었다.

천연가스와 LNG 산업 전반에 대한 전 세계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바쁘게 회의장과 전시장을 오가던 마지막 날 저녁에 야외에서 펼쳐진 바스크인들의 문화 공연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Opening은 아름다운 바스크 민속음악과 함께 화려한 민속의상을 차려입은 여성과 베레모를 쓴 남성 무희들이 토끼처럼 깡충거리고, 우리의 민속 춤인 강강술래를 하듯이 손을 잡고 돌며 흥을 돋우었다. 서커스 공연을 하듯 건물 옥상에서 줄을 타고 거꾸로 내려오면서 펼치는 공연은 오색 찬란한 조명과 어우러져 신비감을 더해주었다. 특전사 군인들이 쓰는 베레모가 이곳의 민속의상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나는 빌바오를 여행하면서 한때는 20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분리주의 테러리스트 중 가장 악명 높았던 지역 중 하나가 바스크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자치권 박탈과 바스크어 사용 금지 등 프랑코 정권의 탄압에 맞서 과격한 분리독립운동 무장투쟁 단체인 ETA가 등장하여 끔직한 테러를 저질렀다지만, 바스크인들의 순박한 모습과 아름다운 도시 풍광 속에서는 과격함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수백 년에 걸쳐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온 바스크인들. 피레네산맥에 걸쳐서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부에는 약 250만 여명의 바스크인 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스페인어와는 전혀 다른 고유 언어를 사용한다.

바스크 주는 원래 나바라 왕국의 영토였기에 1512년 스페인 왕국으로 통합되기 전의 바스크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들이 수백 년 동안 지켜온 바스크 말과 민속음악, 민속춤은 바스크인의 고유색이고, 정체성이며 소중하게 지켜온 역사적인 것이다. 식당에서 물을 달라고 하는데, Water는 물론 스페인어 Agua도 통하지 않았다. 한참 만에 물을 얻어먹었는데, 궁리 끝에 물의 화학 기호인 H2O를 써서 보여줬더니 그제서야 물을 갖다 주던 에피소드도 남아있다.

스페인은 가톨릭교도들이 이슬람지배자를 몰아내기 위하여 800년 동안이나 벌인 기나긴 전쟁에서 되찾은 왕족 형태의 독립적인 가톨릭 국가들로 형성된 연합국가다. 이 각각의 왕국들은 지금도 그 당시의 이름대로 스페인에서 자치권을 행사하는 주 단위로 나누어져 있다. 아라곤 왕국이었던 카탈루냐의 바르셀로나와 함께 이베리아반도에는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언어적 문화적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2011년에 ETA가 휴전을 선언하고 무장 해제를 했다니 다행이다. 모두 평화롭게 ‘하나의 스페인’으로 융화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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