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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새 생명이 왔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한동안 서울 광화문 글 판에 붙여져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란 시의 일부다. 나와 이런저런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한 소중함, 그들을 진정한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임을 일깨워 주는 의미심장한 시 구절이 아닌가 싶다.

방문객 한 사람이 오는 것도 이 정도인데 새 생명이 찾아오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순간을 시인은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해진다.

얼마 전 나에게 방문객이 오는 것보다 천배 만배 더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다. 새 생명이 찾아 온 것이다. 2년 전 결혼 한 큰딸이 작년 말 아기를 가졌고 드디어 사랑스럽고 귀한 우리 손녀(외손녀)가 세상과 마주하며 첫 울음을 터트렸다. 내가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그저 산모와 아기가 건강하기만 바랄 뿐, 할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다가 새 생명을 마주한 첫 순간은 감격스럽기 그지없다. 갓 태어난 신생아인데도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까만 머리카락이 꽤 자라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내 딸이 딸을 낳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다가 잠든 아기의 옆모습을 보니 문득 오래전 큰딸이 태어났던 순간들이 오버랩되며 마치 그날의 데자뷔 같은 모습에 흠칫 놀란다.



80년대 중반 고도성장시대에 젊은 날을 보낸 우리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도 없고 정신도 없이 살았다. 별 보고 출근해서 한밤중에 집에 들어오던 시절이라 육아는 아내와 장모님이 전담해서 맡았던 탓이다. 지나 놓고 보면 우린 두 딸을 참 쉽게 키운 것 같다. 이런 말 하면 집 사람은 펄쩍 뛸 것이다.

애 둘을 키우며 제대로 식탁에 앉아 느긋하게 밥 먹고 커피 한잔 마셔 보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로 힘들었다는데 난 왜 별로 기억이 없는지 아리송하다. 너무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자기 유리한 쪽으로만 기억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위 직장 때문에 해외에서 살고 있는 큰딸은 출산 때문에 세 달 전 친정집인 이곳으로 왔고, 사위도 두 달간 휴가를 내고 출산 열흘 전 합류했다. 둘째 딸하고 세 식구만 살던 집에 세 명이 늘어나 여섯 식구가 됐다. 반려견 나리까지 하면 일곱 식구다. 강아지 때문에 이래저래 잠시 소란스러울 뿐 세상 조용하던 집이 북적거린다.

새벽에 2층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삼십 년 만에 집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나는 것이다. 귀한 새 생명이 왔다는 어마어마한 사실을 실감한다.

환갑 지난 지 정확히 1년 만에 손녀를 봤으니 요즘 추세로는 그리 늦은 편은 아닌 거 같다.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도 누군가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약간은 신기하다. 좀 더 오래 그 기분을 느끼고 싶다.

손주 자랑할 때는 돈 내고 해야 한다는데 앞으로 여기저기 가서 손녀 자랑하려면 돈 많이 들게 생겼다. 그래도 좋다.


송훈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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