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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조국 위해 뭉친 두 환자

[LA중앙일보] 발행 2008/12/29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08/12/28 19:12

조만철 / 정신과 전문의

조그만 증세나 환부를 보고 큰 중병에나 걸린 것처럼 생각하고 극도의 공포심으로 괴로워 하는 것을 건강염려증(Hypochondria)이라 한다.

얼마 전 한 내과 의사가 70세 가량의 한 분이 신경성으로 설사를 자주하고 체력도 떨어지고 입안이 좀 헐었는데 과민 반응을 보이고 계속 여러 의사를 찾아다니며 불안해 한다며 정신과 심리 상담을 의뢰해 왔다.

"선생님 내 이거 입 좀 보이소. 내 입이 다 헐지 않았습니까? 내가 밥도 잘 못 먹고 걱정이 되어 잠도 못자고 불안해서 살기가 힘들어요. 내가 도대체 여기는 왜 온 거요?"

입이 아파 밥을 못 먹어 밥숟가락 든 지도 오래 됐는데 고쳐 주진 못하고 자기를 정신과로 보낸 것에 무척 불만스럽고 화가 잔뜩 난 표정이었다.

"그거 참 살아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군요."

"죽다니 그 무슨 소리요 사람이 한번 죽지 몇 번 죽소?" 하고 대들듯 항의를 한다.

"그 옛날부터 사람이 죽으면 밥숟가락 놓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게 죽은 게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리고 내가 보건데 사람은 한번 죽지 않습니다. 여러 번 죽고 여러 번 다시 삽니다. 선생님도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겪었을 것 같은데요…."

"아 그렇기도 하네요. 사실 여러 번 죽을 고비 넘겼습니다."

이 분에게 잠 오는 약과 입맛 좋아지는 약 그리고 안정제를 드렸더니 3일 후에 와서 "잠을 좀 잘 수 있으니 살 것 같네요. 입 아픈 것도 좀 덜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속이 좀 쓰리고 심장이 자꾸 뛰고 숨도 가빠지는 것 같네요"라며 또 다른 증상을 호소한다. 이런 환자는 새 증상에 집착하기 전에 빨리 다른 곳으로 관심을 옮기는 것이 치료에 중요하다.

"병 이야기는 며칠 후에 다시 이야기 하기로 하고 죽다 살아난 이야기나 다시 한 번 들어 봅시다."

"그 때 6.25 때 전쟁 나가서 여러 번 죽을뻔 했지요."

"조국을 위해서 훌륭한 일을 하셨군요." "아닙니다. 뭐 큰일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그 때 헌병들이 와서 학교 운동장에 다 모이라고 하는 기라예. 뭐가 뭔지 압니까? 군복 한 벌씩 입히고 총 쏘는 것 훈련 좀 시키고 무조건 데려 가는기라예. 처음 어디에 갔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폭탄이 옆에서 터지고 동료들이 막 죽어 가는 기라예. 그 후에 여러 전투에 참가했는데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사실은 기적입니다."

건강에 대해 극심한 불안을 보이던 환자가 옛날 사지에서 살아온 공포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동안 지금 앓고 있는 증세에 대한 불안은 차츰 줄어들고 있었다.

"아무튼 조국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싸우신 분을 만나니 정말 반갑소. 김 선생 우리 다시 조국을 위해 군대를 조직합시다."

"헤헤헤 선생님 참 안 늙겠습니다. 농담도 시원하시네요."

"아니 김 선생 만일 조국이 원한다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습니까?" 단호히 묻는 말에 "있지요. 목숨 하나 바치겠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썰렁한 올림픽가에 어둠이 내리고 조그만 정신과 상담실에 조국을 생각하는 두 사나이 '건강 염려증 노병'과 '안보 염려증 정신과 의사'는 갑자기 애국심에 불타 자못 심각하게 의기 투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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