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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업] 가제목: ‘문제’가 아닌 ‘과제’일 뿐이다

[LA중앙일보] 발행 2008/12/31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08/12/30 17:40

모니카 류
카이저 병원 방사선 암 전문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가을 날'의 일부분을 내 나름대로 번역해 보았다. '주님 지금이 (그) 때입니다. 거대한 여름은 갔습니다. 해시계를 당신의 그림자로 덮으십시오…(중략)…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집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홀로 있는 사람은 늘 고독하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시는 지금 우리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과 어수선한 마음을 잘 표현 해 주는 것 같다. 가계부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버려지는 애완용 개와 고양이가 늘고 있다고 한다. 중동지역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고아 미망인 상이군인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은 정신과 전문의들의 평생 작업이 되어야 할 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뒷골목에도 노숙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인 것이다.

부슬 부슬 겨울비가 내리던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나를 찾아 온 패트릭과 일일 노동자인 '팽키 아저씨'가 카운티 병원 응급실에서 12시간 이상을 기다렸다가 치료를 받아야 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패트릭은 5년전 36세 때 뇌종양 수술을 받고 나에게 보내졌던 환자다. 그에게는 아내와 당시 여섯 살 한 살짜리 두 아이가 있었다. 가족들을 깊이 가슴에 새기고 투병할 결심이 되어 있던 모습은 처절하기 보다는 숭고해 보였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뇌종양의 의학적 결과는 일단 뒤로 했다. 그리고 희망을 갖고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치료하기 힘든 자신의 병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의 자상한 아빠로 축구 코치로 피아노 레슨하는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운전기사로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제시한 실험적 치료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청했다.

'팽키 아저씨'는 체구가 왜소한 한국 사람이다. 오래 전 그는 세상을 방황하다가 이탈리아에 머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굶은 상태에서 열이 난 그는 어느 대성당 앞의 벤치에 누웠다가 잠이 들었다. 누군가 어깨를 흔들며 깨워서 눈을 떠보니 한 젊은 이탈리아 신부가 빵과 포도주 한 병을 들고 그의 앞에 서 있더란다. 그 후 이 '팽키 아저씨'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처지인데도 자신이 먹을 것만 남기고 노숙자를 찾아 다니며 더 가난한 이들을 돕게 됐다. 이렇게 살아 온 이 아저씨가 중병에 걸린 것이다.

보험이 있을 리 없고 영어도 못해서 성당의 사회복지 담당하는 한 여성이 카운티 병원으로 데리고 갔고 하루종일 기다린 끝에 간신히 입원을 시켰다고 한다.

이 두 케이스를 보면서 우리는 삶의 어려움을 '문제'로 삼기 보다는 함께 해결해 나갈 '과제(task)'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계부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문제가 아닌 과제라면 가족들은 서로 소비를 줄여도 불평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감원을 감행하는 많은 회사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불경기를 문제로 보면 마땅히 감원을 해서 적자를 해결하려 하지만 모두가 풀어갈 과제로 받아들이면 전직원이 봉급을 적게 받더라도 함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문득 릴케처럼 잘 쓰지는 못해도 이렇게 기도하고 싶어진다. '아닙니다 주님. 지금 집이 없는 사람도 언젠가는 따뜻한 잠자리를 갖게 될 것입니다. 또 지금 외로운 처지라도 '팽키 아저씨'처럼 남을 돕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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