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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용은 개천이 아니라 알에서 태어난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정말이지 너무 당혹스럽다. 개천에서 나든, 하천이나 바다에서 나든 중요한 것은, 용은 알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교육이 태생을, 재능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리오넬 메시는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진학한 것이 아니다.

더 일반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2차 세계대전 '맨해튼 계획'의 물리학자들, 알버트 아인슈타인을 필두로 로버트 오펜하이머, 닐스 보어, 폰 노이만, 리처드 파인먼까지 모두 정규 교육에 속한 자들이다. 현대 과학에 독보적 족적을 남겼다지만 그자들이 한 것은 감당 불가능한 핵무기를 통제 불가능한 권력자들에게 넘겨준 것이었다.

일반적 예를 든다더니 더 멀리 나간 거 아니냐고 비난할지 모르겠다. 용이라는 비유를 너무 거창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냐고 되물을지도. 하지만 난 도리어 이렇게 묻고 싶다. 이 정도도 못 되는데 도대체 누구를 용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해마다 노벨상 발표 전후로 이목을 집중하고 뻔한 결과에 실망하고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한국사회 역시 용의 출현을 간절히 바라고 필요로 하기 때문 아닌가?

한국 사회의 용이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왜인가? 한국사회에서 개천의 용이 용으로서 홀로 날아오를 수 있는가? 한국사회에는 용보다 용의 지위, 용의 부동산이 먼저 있다. 너무 높고 값비싸 어지간한 용은 날아올라 갈 수도 없는. 게다가 이미 꽉꽉 들어차 있기까지 하다. 운 좋게, 혹은 무수한 희생으로 얻은 그 지위를 지키고 세습하려 뒤로는 온갖 편법과 탈법을 자행하면서 앞에서는 뻔뻔스럽게 너희들도 용이 되어보라고, 시키는 대로 하면 자기처럼 용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 젊음과 재능을, 수많은 용을 자신과 똑같은 이무기 떼로 양식하고 회 쳐 먹으려는 자들.



고로, 개천에서 용이 나야 하니 말아야 하니 하는 말들은 모두 허황하다. 교육이 부와 계급의 세습, 기회의 불균등을 해소하는 창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도 똑같이 허황하다. 교육의 본질은 교육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교육은 용 아닌 이를 용으로 만들 수 없다. 재능의 탄생과 발현에 교육은 기꺼이 고개를 숙이며 앞을 내줄 수 있을 따름이다. 동시에 교육은 용의 불길이 초래했거나 초래할 수 있는 오류와 실패를 일깨우고 가르칠 수 있다. 선진교육에서 보편화한 과학의 선용, 전쟁의 부당, 인종과 성별 차별에 대한 부정이 그 예다.

그 본질과 본분을 호도하고 교육을 계층이동의 수단으로 삼은 결과를 이미 보고 있지 않은가? 수많은 젊음과 재능이 엇비슷한 시험준비로 고시원과 열람실에서 낭비되고 있다. 나란히 설 가치는 한줌도 되지 않고 갈라설 차별은 넘쳐난다. 정작 필요한 용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부와 계급의 세습은 제도와 법으로 다스리고 내리쳐야 할 문제다. 기회의 불균등은 단기적으로 편법·불법·탈법적인 부의 이동을 막는다면 상당부분 자연스럽게 해소될 문제다. 장기적으로 교육의 역할이 있기는 하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인식과 윤리적 태도가 범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거기까지다.

그러므로 정중히 청하고 또한 조언하건대, 개천에서 용이 나온다는 말을 이제는 정치적 관용구가 아닌 실용적 어구로만 사용하기 바란다. 자기보다 못사는 사람이 성공해 배가 아플 때 하는 한마디. "개천에서 용 났네?" 물론 가만히 듣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게, 누가 하천에서도 장어밖에 못 되는 동안."


이혁진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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