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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묵인 아래 칼 빼든 터키…백척간두에 선 시리아 쿠르드

[연합뉴스] 기사입력 2019/10/09 13:06

터키, 시리아 내 쿠르드 지역 공격…'평화의 샘' 작전 개시
시리아 북동부 도시 공습·포격 이어 지상군 작전에도 착수
결사 항전 태세 쿠르드, 주민에 동원령…시리아 정부군과도 접촉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 미국의 묵인 아래 터키가 결국 '눈엣가시' 시리아 쿠르드족을 치기 위해 칼을 빼 들었다.

세계를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은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쿠르드족은 터키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모습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터키군과 시리아국가군(SNA)이 시리아 북부에서 PKK와 YPG, 다에시(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아랍어 약자)에 대한 '평화의 샘' 작전을 방금 시작했다"고 밝혔다.

터키 국방부에 따르면 '평화의 샘' 작전은 이날 오후 4시 정각에 시작됐다.

터키군의 F-16 전투기와 포병대가 라스 알-아인과 탈 아브야드를 시작으로 터키 접경지역의 국경도시를 향해 불을 뿜었다.

이 두 곳은 최근까지 미군이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비대(YPG)와 함께 주둔하던 곳이자, 지난 2015년 YPG가 IS로부터 탈환한 곳이다.

터키는 뒤이어 시리아내 쿠르드족에 대한 지상작전도 개시했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민족'으로 불리는 쿠르드족은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군이 수도 다마스쿠스 방어를 위해 북동부를 비운 사이 이 지역을 장악하고 사실상 자치를 누려왔다.

2014년 IS가 발호하자 쿠르드족은 IS로부터 자치 지역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항전했고, 차츰 IS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활약을 눈여겨본 미군은 본격적으로 쿠르드족을 지원했고, YPG는 IS 격퇴 지상전의 선봉에 서게 됐다.

지난 3월 IS 최후의 저항 거점 바구즈 함락의 주역도 YPG가 주축을 이룬 시리아민주군(SDF)이었다. 쿠르드족은 5년간 이어진 대(對) IS 전투에서 1만1천명의 목숨을 잃었다.

쿠르드족은 이들의 희생을 담보로 미국의 동맹 세력으로 입지를 굳혔으며, '독립국 건설'이라는 이들의 꿈도 실현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웃의 지역 강국 터키는 불안한 눈으로 이들을 바라봤다.

전 세계 쿠르드족의 수는 약 3천만∼4천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1천500만명 이상이 터키 동남부에 거주하고 있다.

CIA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터키 인구 약 8천100만명 중 쿠르드계 인구는 19%에 달한다.

시리아 쿠르드족이 독립국의 기치를 올릴 경우 가장 큰 불안에 노출될 국가가 바로 터키인 셈이다.

더구나 터키 국내에는 40여년 전부터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테러를 자행해 온 '쿠르드노동자당'(PKK)이 존재한다.

YPG는 PKK와의 관계를 전면 부인하지만, 이들이 국내외에서 호응해 쿠르드족의 독립을 시도할 경우 국가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터키가 YPG를 PKK의 지부라고 주장하고 최대 안보 위협 세력으로 인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터키는 수차례 '눈엣가시' 시리아 쿠르드족을 몰아내기 위해 군사작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시리아 북동부에 주둔 중인 미군에 가로막혀 번번이 실패했다.

터키 접경도시 탈 아브야드와 라스 알-아인에 주둔하던 미군은 터키의 위협에서 쿠르드 동맹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터키 역시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 하나다.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차지한 터키는 냉전 시대부터 러시아 해군의 남하를 저지해 왔으며, 현재도 미 공군의 중동 지역 작전에 전초기지를 역할을 하고 있다.

IS가 공식적으로 패망하자 터키는 미국에 끊임없이 YPG 지원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고, 미국은 궁여지책으로 터키와 시리아 북동부 국경 사이에 '안전지대'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양측은 안전지대의 규모와 관리 주체 등을 놓고 끝까지 견해를 좁히지 못했다.





터키는 480㎞에 이르는 유프라테스강 동쪽 시리아 북동부 국경을 따라 폭 30㎞ 규모의 안전지대를 설치하고 터키군이 이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터키는 안전지대에 주택 20만 채를 건설해 자국 내 시리아 난민 365만명 중 100만명을 이주시키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사실상 안전지대를 터키의 보호령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에 미국은 난색을 보였고 터키는 시리아 북동부에서 YPG를 몰아내기 위해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시작하겠다고 미국을 압박했다.

결국 미 백악관은 지난 6일 "터키군이 시리아 북부에서 군사작전을 추진할 것이며, 미군은 이 작전에 지원도, 개입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의 불개입 선언은 사실상 쿠르드족에 대한 배신으로 해석됐다.

국제사회는 미군이 개입하지 않을 경우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운 터키군에게 쿠르드족이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우려했다.

파노스 뭄치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시리아 조정관은 1995년 보스니아 내전 중 8천500명의 희생자를 낸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언급하며 "최악의 경우도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국내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비판이 쏟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조차도 "이번 결정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한지 분명히 하고 싶다"고 혹평했다.

국내외의 질타가 이어지자 트럼프 대통령도 "터키가 도를 넘은 것으로 판단되면 나는 터키 경제를 완전하게 파괴하고 말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터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개입 선언이 나온 지 사흘 만에 시리아 북동부를 향해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일각에서는 무수한 반대에 트럼프 대통령의 결심이 흔들릴 것을 우려해 터키가 서둘러 작전을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궁지에 몰린 쿠르드족은 결사 항전의 태세를 보인다.

시리아 쿠르드 자치 정부는 이날 "터키 침공에 대비해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 3일 동안 전체 동원령을 내렸다"면서 쿠르드인들에게 "의무 이행을 위해 터키 국경으로 향하라"고 촉구했다.

한편으로는 그간 적대시하던 알아사드 정권과 손을 잡으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이날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에 시리아 정부군과의 중재를 요청했다.

알아사드 정권 역시 시리아 쿠르드족을 포용할 뜻을 밝혔다.

파이살 미크다드 시리아 외교차관은 전날 친(親)정부 일간 '알와튼'과의 인터뷰에서 "조국은 모든 아들을 환영한다"며 쿠르드족에게 정권 측에 설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알아사드 정권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독립국 건설의 꿈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 버림받고 터키의 창칼 앞에 선 쿠르드족은 독립국 건설을 위해 투쟁을 계속할 것인지, 생존을 위해 알아사드 정권의 우산 아래로 들어갈 것인지를 두고 고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kind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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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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