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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눈물의 팔레스타인

이종호/편집위원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땅에 젖과 꿀이 제대로 흐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립과 반목은 그치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배반의 역사 앞에 하나님의 영광은 빛이 바랬다. 그리고 지금도 분노와 쟁투의 땅이라는 오명이 뒤덮고 있다.

팔레스타인 땅에 다시 포성이 일고 있다. 한숨이 고이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은 가혹했다.

하마스 축출을 내걸었지만 희생은 이미 700명에 이르고 있다. 어린이 노약자 같은 무고한 시민도 상당수 포함됐다. 국제 사회가 이스라엘에 대해 공분하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주는 둘로 나뉘어 있다.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가자지구와 친이스라엘 자치정부가 지배하는 요르단강 서안이다. 하마스는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으로 반이스라엘 무장 투쟁을 내세운다. 이스라엘로서는 방치할 수 없는 눈엣가시인 것이다. 이번 침공의 발단도 여기에 있었다.



분쟁의 실타래는 난마처럼 얽혀 있다. 영토문제.종교문제.분리독립 문제 그리고 식민 지배의 잔재까지 겹쳐 꼬일 대로 꼬여 있다. 거기다 강대국들의 이해득실까지 더해져 더욱 어지럽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꿰뚫어 아는 만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처지도 이해해야 한다.

유대인의 역사는 눈물겹다. 서기 70년 로마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한 이후 1900년을 흩어져 살았다. 나치의 학살로 몇백 만 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1948년 마침내 그 땅에 다시 나라를 세웠다.

이스라엘은 다시 섰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갈 곳이 없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블렛셋 족속이 그들이었다.

그들 역시 2000년 이상을 살아온 그 곳이 고향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쫓겨나지 않기 위해 생존을 위해 저항할 수 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역시 그 땅을 다시 잃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부라린다. 이것이 작금의 사태의 본질이다.

이스라엘 뒤에는 미국이 있다. 아니 미국의 유대인들이 있다. 그들은 미국의 정치와 경제를 쥐락펴락한다. 그로 인해 미국은 항상 친이스라엘 정책을 고수해 왔다. 이번 침공도 이스라엘의 정당한 자위권 발동이었다는 미국의 첫 반응도 그래서 이상할 것이 없다.

나는 이스라엘을 좋아했다. 성서에서 탈무드에서 그리고 유대인들의 수많은 성공 신화에서 얻어 들은 막연한 친근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상을 알게 되면서 그것만이 온당한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면서 얼마나 하나님을 욕되게 했던 가도 알았다. 2000년을 유랑하며 고통받았던 그들이 이제 오히려 가해자가 되어 팔레스타인을 그렇게 핍박하는 대목에서는 실로 참담함을 금치 못한다.

그나마 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럼에도 물과 전기가 끊긴 가자지구는 여전히 지옥이다. 정녕 공존의 길은 없는 것일까. 진정한 평화는 요원하기만 한 것일까.

해답은 어쩔 수 없이 강자의 아량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아무리 강력한 국가라도 혼자만 잘 살 수는 없다. 지금 힘 있는 이스라엘이 양보해야 하는 까닭이다. 더불어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만이 평화의 열쇠다.

미국도 더 이상 그냥 있어서는 안 된다. 국제 사회는 오바마가 부르짖었던 정의와 공평을 기대하고 있다. 우물쭈물할 틈이 없다. 오바마 차기 대통령은 불황 타개라는 무거운 짐 위에 팔레스타인 사태라는 또 하나의 화급한 짐을 더 짊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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