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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우리는 고아가 아니다

이대열 목사 (열매맺는교회)

지난달 저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그 다음날 한국을 향하였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눈을 뜨실 힘은 없었지만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정신이 맑으셨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존댓말을 사용하셨습니다. “목사님... 물 주세요” 그리고 저희가 간병한지 일주일 만에 주님께서는 어머니를 주님 품으로 부르셨습니다. 어머니의 죽으심과 장례를 통하여 묵상하였던 내용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저의 어머니는 85세의 연로함으로 죽음을 통과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나이와 상관없이 죽음을 언제든지 맞이해야 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현실에 충실해야 하지만 또한 죽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은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 집에 가는 것이 좋다. 산 사람은 모름지기 죽는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전도서 7:2)



성남화장터에서 장의차들이 행렬을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던 지인이 “사람들이 화장터에 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아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인간이 결국 한줌의 재로 운명을 마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며 산다면 삶의 자세가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적이고 현세적인 것에 우리의 시간과 재물과 에너지를 다 쏟아 붇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허무합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7)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8) (전 12:7, 8)

결국 인생은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것인데 현세적이고 육신적인 필요에만 급급한 나머지 영원하고 영적인 것에 집중하지 못하는 삶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2. 성도는 고아가 아니다

어머니의 장지로 가는 도중 저의 둘째 매형이 “처남, 우리 모두 고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이제 고아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육신적으로는 모두 고아가 될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영원한 아버지가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아버지”를 제일 많이 불렀습니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를 말합니다. 죽음이라는 고통의 터널을 견디고 이겨내기 위하여 오직 “아버지”의 도우심만이 필요하셨던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인간은 영원한 아버지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죽음이라는 공포의 순간을...그리고 죽음 너머의 세계를 준비하기 위하여...우리 모두는 영적인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영원한 아버지와 연결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결코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한복음 14:18)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영원한 아버지께 보혜사 성령을 보내달라고 간구하셨습니다. 성령은 성도를 구원하기 위하여 성도 곁으로 오셔서 (보혜사: 파라클레토스, Called to one’s side) 진리를 알게 하시고 영원한 아버지께 연결시켜 아버지의 자녀로 인도하시는 영이십니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성도 속에 임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로서 성도는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성령이 보혜사로 함께 거하심으로 결코 고아로 버려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도 안에 계신 성령은 성도가 하나님을 영원한 아버지로 부르게 만드셨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15)

그렇다면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즉 성도가 고아가 아니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는 아버지의 통치를 받으며 산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을 즐거워하며...그분의 뜻을 좇아 순종하며 살려고 합니다.
둘째는 죄와 싸우는 거룩한 투쟁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죄가 만들어 놓은 세속적인 가치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세상의 자랑거리) 과 영적 자존심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또한 육신적인 한계로부터 오는 고통과 질병과 결핍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고통은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얻기 위하여 고통을 견뎌내야 합니다.

셋째, 아버지의 유산 (천국) 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저의 가족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순간 슬픔과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육신적으로 어머니를 다시 볼 수 없는 슬픔이 컸습니다. 동시에 어머니가 더 이상 육신의 고통을 경험하지 않고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시고 천국에 입성하셨다고 믿기 때문에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은 하나님의 나라...천국입니다. 천국의 특징은 (1)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성취되는 곳으로 (2) 더 이상 죄는 존재하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는 더 이상 죄가 만들어 낸 온갖 고통, 질병, 슬픔과 죽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기쁨과 평화와 공의가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은 일종의 순례자의 삶입니다. 순례자는 돌아가야 할 고향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 땅이 영원한 고향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영원한 고향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성도는 결국 돌아갈 수 있는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가 있기에 이 땅에서 실패를 한다할 지라도 고통을 경험하며 억울할 때에라도 크게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그 어떠한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한복음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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