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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태항산 8개 지레목…중원·변방 잇는 천하 절경

태항산 서쪽은 산서, 동쪽은 산동
남북 400㎞ 뻗은 산맥엔 협곡·초원

중원 농경 vs 서북 유목 세력 충돌
북방 호족에겐 중원 노린 돌파선
중원 입장에선 호족 저지 방어선

태항 팔형의 하나인 백형. 기원전 550년 제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정벌할 때 통과했던 길이다.

태항 팔형의 하나인 백형. 기원전 550년 제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정벌할 때 통과했던 길이다.

 백형에 남아 있는 산길. [사진 윤태옥]

백형에 남아 있는 산길. [사진 윤태옥]

태항산의 서쪽이라 산서(산시)고 동쪽이라 산동(산둥)이라고 한다. 서쪽은 산시고원이 펼쳐지고 동쪽은 탁 트인 화북평원이 지평선을 한참이나 그리다가 황해에 다다른다.

태항산은 베이징의 시산에서 시작하여 황하 북안의 왕우산까지, 남북으로 400여㎞나 뻗은 산맥이다. 산시고원은 해발 800m 이상이고, 동쪽의 화북평원은 해발 50m 이하이다. 그리하여 태항산은 물길을 동서로 가르지 않고 계곡으로 틈을 내어 서에서 동으로 흘려보낸다. 강이 산맥을 가로지른다.

최근 한국인들의 중국여행에서 태항산은 인기가 높다. 상상을 뛰어넘는 깊은 협곡과 산상 대지에 펼쳐진 기묘한 풍광들이 여행객들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중국에서도 수많은 시인묵객의 사랑을 받아왔다. 중국의 전통 산수화를 남북으로 나눈다면 북화는 태항산의 절경을 담아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쪽 왕우산은 도교 성지

역사로 보면 산시 지역은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남북 혼거지역이었고, 태항산은 중원의 농경세력과 서북의 유목세력이 충돌하고 접변하는 경계였다. 서북 세력이 산시를 차지하면 태항산 계곡을 통과하여 화북평원으로 쏟아져 내려갔다. 낙양·업성·개봉·정주 등 중원의 한복판으로 곧장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중원의 힘이 태항산 계곡을 거슬러 산시를 장악하면 몽골초원까지 거침없이 내달을 수 있었다. 북방 호족들에게는 물산이 풍부한 중원을 노리는 돌파선이었고, 중원에서는 그들을 저지하는 방어선이었다.

산맥에는 능선이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 지레목이 있고 그곳에는 길이 생기기 마련이다. 길이 나면 사람과 물산이 오갔고 시간이 쌓이면 역사가 흘렀다. 태항산에는 중원과 변방이 통하는 여덟 개의 지레목이 있으니 이를 태항 팔형이라 한다. 가장 남쪽의 제1형은 지관형이다. 허난성 지위안시에서 산시성 허우마시로 넘어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가면 태항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왕우산이 나온다. 도교의 성지로 유명하다.

제2형은 태항형이다. 허난성 친양시 창핑촌에서 산시성 진청시 쩌저우현 완청촌의 천정관까지 238번과 333번 성도다. 이 구간은 해발 1500m 정도로 능선에서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능선 좌우로는 경사가 심해 인마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 보였다. 전국시대 진이 조와 벌였던 장평지전(기원전 260년)에서 진의 주요 공격루트였다고 한다. 이 전쟁에서 진나라 군대는 승리에도 불구하고 30만이 죽었고, 패배한 조나라는 45만이 참수나 갱살을 당했다고 한다.

지금은 산시성 초입에 천정관의 유적이 일부 남아 있다. 허난성 쪽에서는 공사를 위해 도로를 폐쇄했다. 폐쇄한 덕분에 텅 비게 된 산길은 쾌적한 드라이브나 느긋한 도보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제3형은 백형이다. 허난성 후이셴시의 남관산에서 산시성 링촨현의 마거당과 훙더우산 대협곡으로 이어지는 백여㎞의 깊은 협곡길이다. 기원전 550년 제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정벌할 때 통과했다는 그 길이다.

백형은 협곡 위아래로 1000여m의 고도 차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팔형 가운데 가장 깊은 계곡이다. 일부 구간에서는 옛 산길을 느긋하게 걸으면서 옛길의 정취와 협곡의 장관을 두어 시간이나 만끽할 수 있다. 팔형의 네 번째는 부구형이다. 허베이성 한단시 펑펑쾅구 시즈팡촌에 부구형 표지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출발하여 약간 북상하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태항산으로 들어가고, 다시 서남으로 진행하여 창즈시에 이르는 길이다. 남북조 시대의 북제(550~577년)는 국도(지금의 허난성 한단시 린장현)와 배도(지금의 타이위안시 진위안구) 두 개의 수도를 운영했다. 부구형은 이 두 수도를 잇는 국가 운영의 핵심적인 교통로였고, 교역도 활발했다.

다섯 번째 정형은 예나 지금이나 산시성 수도 타이위안과 허베이성 수도 스자좡을 연결하는 간선이다. 태항산 산길은 핑딩현에서 징싱현까지다. 핑딩현의 낭자관, 톈창진의 당송고성, 징싱현의 동천문과 진황고역도를 하나하나 찾아볼 만하다. 낭자관은 당고조의 딸인 평양공주가 낭자군을 이끌고 지켰다는 관문이다.

여섯 번째 비호형과 일곱 번째 포음형은 ㅗ자 형태로 이어진 길이다. 포음형은 산시성 다퉁(북위의 평성) 링추, 허베이성 라이위안을 거쳐 베이징 서남부인 팡산구로 연결되는 길이다. 3대 황제 태무제가 북중국을 통일했을 때 바로 이 길이 정복의 길이었다.



지금은 종횡 고속도로도 관통

팔형 가운데 일곱 개는 동서 방향이지만 비호형은 남북으로 난 길이다. 허베이성 위현에서 라이위안현으로 내려와 포음형과 만난다. 비호형은 거란·여진·몽골 등 북방세력이 베이징을 공략할 때 우회하는 침투로가 되기도 했다. 비호형은 협곡 바닥의 길이고 협곡 위로는 공중초원으로 잘 알려진 멋진 산상 초원이 펼쳐져 있다.

마지막 팔형은 군도형이다. 베이징 서북 외곽에서 장자커우 후허하오터로 이어지는, 북방초원으로 바로 닿는 고갯길이다. 베이징 인근의 만리장성으로 유명한 팔달령과 거용관이 바로 군도형의 일부이다. 베이징을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엄중하게 지키는 길이다.

길은 사람이 오가고 세월이 쌓이면 역사가 된다. 태항산, 지금은 종횡으로 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어 21세기 역사를 현기증 나도록 휘갈겨 써가고 있다. 현대 이전의 느릿해 보이는 역사는 팔형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윤태옥은 중국에 머물거나 여행한 지 13년째다. 엠넷 편성국장, 크림엔터테인먼트 사업총괄 등을 지냈다. 『중국 민가기행』『중국식객』『길 위에서 읽는 중국현대사 대장정』『중국에서 만나는 한국독립운동사』 등을 펴냈다.


윤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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